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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대를 앞서 살았던 ‘전투파’ 여성운동가

등록 2022-07-14 18:17수정 2022-07-15 02:38

[나는 역사다]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

“(여성운동가는) 욕구불만으로 배배 꼬인 사람이라는 조롱을 듣는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영국 여성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글이다. “(내가 과격한 말을 하면) 우호적인 정치인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 했다.” 물론 주위의 지나친 걱정이었다. 역사는 그의 편을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은 비슷한가 보다. ‘여성 말고 남성과도 연대하라'느니 ‘여성운동 말고 다른 운동도 배우라'느니 남자들은 잔소리도 많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어땠나. ‘연대'를 통해 운동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어릴 때 맨체스터에 살며 미국 흑인노예 해방운동에 연대했고, 아일랜드 해방운동을 응원하며 그 전술을 배웠다. 커서는 런던에서 파업투쟁을 지원하고 노동운동, 빈민운동과 연대했다.

“수많은 사람이 개인의 고통 때문에 사회 불의에 눈뜨게 되지만 나는 그러한 경험이 (거의) 없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자서전 <나의 이야기>(한국어판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 밝힌 내용이다.

그는 ‘전투파'였다. 여성 투표권을 요구하며 격렬히 싸웠다. 처음에는 의원들 낙선운동을 벌이며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그나마 이때는 비폭력 운동이었다. “어느 날 시위를 마친 뒤 경찰관 하나가 ‘남성들이 이런 시위를 했다면 오래전에 유혈 참사가 났을 터'라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여성으로서 자랑스러웠다.”

나중에는 더 과격해졌다. 건물 유리창을 깨부수고, 기간 통신망을 파괴하고,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골프장을 습격해 잔디를 못쓰게 만들고, 우체통을 화학약품으로 태우고, 정치인 집 공사 현장을 인부가 없을 때 폭탄으로 날려버렸다. 사람 목숨만 손대지 않았다. “정부는 우리 여성의 목숨보다 사유재산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재산에 손해를 입혀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려 한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858년 7월14일 또는 15일에 태어났다. 감옥도 숱하게 들락거렸다. 1928년 6월14일 70살을 일기로 그가 떠나고 18일 뒤 영국에서는 21살 이상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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