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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 권력자들의 연대’에 맞서는 연대를

등록 2022-07-17 18:26수정 2022-07-18 02:38

영화 <파이트 클럽> 마지막 장면.
영화 <파이트 클럽> 마지막 장면.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은 현대문명을 파괴하겠다는 주인공의 욕망이 실현되면서 끝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올해 초 중국에서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을 때 해당 장면은 삭제됐다. 그 자리에는 대신 ‘빌딩들을 폭파하려던 계획은 경찰에 의해 진압됐고, 주인공은 체포돼 정신병원에 보내졌다’는 요지의 자막이 삽입됐다. 신자유주의적으로 바뀐 이 결말은 권력 간 연대를 뜻한다. 심지어 그 권력이 미국의 권력인데도 그렇다.

자신을 자유주의 서구의 사회주의적 대안으로 내세우는 중국은 도대체 왜 서구사회에 극도로 비판적인 영화의 결말을 바꾼 것일까? 금융기업들의 빌딩을 모두 폭파하겠다는 계획을 왜 정치적 저항에서 치료해야 할 병으로 깎아내렸을까?

중국은 2019년 10월 여러 언론을 통해 “유럽과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들은 서구가 홍콩 시위를 관용한 직접적인 결과”라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홍콩 시위가 스페인, 칠레 등 전세계 반정부 시위들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 경고는, 중국공산당이 대중의 저항과 마주하고 있는 전세계 권력자에게 은밀하게 표시한 연대 의식이었다. 지금 권력을 쥔 이들은 이데올로기적, 지정학적 긴장을 초월해 권력 유지라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미국 상황은 어떤가. 6월18일 텍사스주 공화당은 주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미국을 내전으로 향하게 하는 첫번째 단계로, 미국의 기존 정치적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까지 더해지면 전망은 암담하다. 만약 다음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해 승리하면, 그는 러시아와 연대해 우크라이나를 버릴 수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그동안 유럽을 조각내려는 목표를 위해 영국의 브렉시트, 스페인의 카탈루냐분리주의, 프랑스의 마린 르펜,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등을 지지해왔다. 오늘날 정치에서 반유럽이라는 축은 매우 위험한 요소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정권들이 오래된 반유럽 본능을 따라 러시아 쪽으로 기울게 된다면, 우리 앞에는 권력을 지닌 이들끼리 서로 굳건히 연대하는 슬픈 신세계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러시아와 일부 서구 좌파는 2013~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권에 대한 대규모 봉기 ‘유로마이단 시위’가 일어나자 미국 선동으로 인한 나치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로마이단 시위는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진정한 의미의 대중 저항이었다. 나치 쿠데타와 거리가 멀었고 홍콩, 이스탄불, 아랍국가들, 벨라루스에서 일어났던 시위들과 궤를 같이하는 시위였다.

푸틴은 올해 2월21일 “우크라이나는 볼셰비키 공산주의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유로마이단 당시 레닌 동상들을 철거하며 그것을 탈공산화라고 불렀다. 그렇게 원한다면 진정한 탈공산화가 무슨 뜻인지 보여주겠다”고 연설하고 며칠 뒤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진정한 탈공산화를 위해서는 러시아의 산물인 우크라이나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기서 푸틴이 “탈공산화”를 문자 그대로도 의미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즉 푸틴이 하고자 하는 것은 좌파의 중심축인 복지국가 유산을 마지막 흔적까지 없애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딱하게도 좌파를 자처하면서도 푸틴을 옹호하는 이들은 1940년대 나치에 맞서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자칭 “반제국주의” 평화주의자들과 같은 이들이다.

그동안 러시아와 중국은 자신의 영향권 안에서 대중의 저항이 일어날 때마다 서구가 선동한 계략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전세계적으로 대중의 깊은 불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문제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전세계 권력자를 향해 연대를 호소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새로운 이데올로기 진영의 어느 쪽에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권력을 쥔 이들이 저렇게 나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좌파의 전통에 따라, 저항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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