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가치중립적인 단어지만 부정적인 맥락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들이 있다. 냄새가 대표적이다. 꽃에서 나는 냄새는 꽃향기라고 하지 꽃냄새라고 하지 않는다. 체취도 그렇다. 여러 사람 앞에서 “당신, 체취가 강한데”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특히 지금 같은 여름철에는.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체취가 가장 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겨드랑이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즉 액취는 ABCC11 유전자의 변이형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데 G형은 강하고 A형은 미미하다. ABCC11은 냄새 분자를 세포 밖으로 운반하는데, A형은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 10년 전 일본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100% A형이었다. 반면 아프리카인은 거의 100% G형이었다.
원래 인류의 ABCC11 유전자는 G형으로, 수만년 전 동북아시아로 이전한 무리가 추운 겨울 날씨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A형 변이를 가진 사람이 선택된 결과로 보인다. 대구시민 100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지만, 이 결과에 한국인을 부러워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냄새, 즉 액취는 ABCC11 유전자의 유형에 따라 강도가 좌우된다. G형은 강하고 A형은 약하다. 10년 전 일본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00% A형으로 세계에서 체취가 가장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학 개척자들’(Frontiers in Genetics) 제공
체취가 꼭 나쁜 건 아니다. 산책하다 보면 지나가다 만난 개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상대의 체취를 맡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포유류는 눈과 귀뿐 아니라 코로도 의사소통을 하고, 체취로 심신의 상태를 파악한다.
사람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대의 체취에 따라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눈물에 포함된 체취에도 반응한다. 예를 들어 슬픈 영화를 보던 여성이 흘린 눈물을 묻힌 천을 남성의 코에 댄 뒤 여성에 대한 매력도를 평가하게 하면 점수가 낮아진다. 여성의 눈물 냄새를 맡고 난 뒤 남성호르몬 수치는 평균 13% 줄어들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 면역과 관련된 MHC 유전자는 체취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배우자 사이의 MHC 유전자 차이는 임의로 고른 남녀의 차이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체취가 비슷하면 꺼리게 된다는 얘기인데, 유전적 결함이 있는 자손이 나올 확률이 높은 근친교배를 피하려고 진화한 전략으로 보인다.
반면 동성 친구 사이는 체취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렸다. 앞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체취가 비슷하다는 건 여러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뜻이고, 성격이나 취향도 비슷할 확률이 높다. 처음 본 사람과 대화하는 실험 결과도, 체취가 비슷할수록 말이 잘 통하고 상대를 좋게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유상종이라는 속담을 실험으로 증명한 셈이다. 이처럼 우리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체취는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정보로 작용한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소녀를 살해한 주인공 그르누이가 체취가 없는 사람으로 설정된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