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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불만의 여름

등록 2022-07-24 18:19수정 2022-07-25 02:36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주민들이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영국 통계청(ONS)은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 동월 대비 9.4% 올랐다고 이날 발표했다. 1982년 이래 40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런던/EPA 연합뉴스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주민들이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영국 통계청(ONS)은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 동월 대비 9.4% 올랐다고 이날 발표했다. 1982년 이래 40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런던/EPA 연합뉴스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생활비가 치솟고 있다. 이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중산층에게도 점점 더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례 없는 에너지가격 인상은 ‘연료 빈곤층’도 증가시켰다. ‘에너지가격 상한제’로 묶인 영국의 에너지가격도 10월에 또 한번 상당히 상향 조정될 예정이어서 에너지 빈곤층은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동시에 식품가격 상승은 노동자들 살림살이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우고 있다. 영국 물가상승률은 10%에 육박하고 있으며, 영국 중앙은행은 올가을께 10%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부 분석가는 심지어 14% 상승이 예상된다고 우려한다. 인플레 억제를 위해 금리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 대출금 상환 부담을 키워 결과적으로 치솟는 생활비 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분명 영국을 뜨겁게 달군 것은 기록적인 폭염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보수당 내 신뢰를 잃었고, 그 결과 보수당의 새 당대표와 총리를 선출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새 총리가 9월 초엔 취임할 것으로 예상하지만(물론 지금의 정치적 공백은 큰 걱정거리이긴 하다), 그들에게 ‘생활비 폭등 위기’라는 문제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노동조합들은 정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자 생활수준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폭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 쟁의는 이미 영국 전역에서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또 보통은 파업을 잘 하지 않는 형사 변호사들조차 빈곤계층 법정소송 지원비의 인상폭이 낮아 직업뿐 아니라 형사재판시스템의 유지도 위협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거부하며 파업을 했다. 파업 흐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공부문에서는 교사, 의사, 간호사 직군이 가장 앞서 파업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민간부문에서는 항공업계와 우체국 두 영역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대학교수들도 올해 이미 여러차례 파업을 했다. 사람들은 현재 상황을 영국에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던 1978~79년의 악명 높은 ‘불만의 겨울’에 빗대 ‘불만의 여름’이라 부르고 있다.

비록 지금의 사회경제적 위기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여러 경제 영역에 걸쳐 진행 중인 산업계 불안은 더 깊은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 수년간 억제된 임금인상은 이미 많은 노동인구의 생활수준을 상당폭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뿐 아니라 일을 하는데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도 늘었다. 이런 상황은 결코 영국만의 것이 아니다. 놀랄 것도 없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임금을 둘러싼 산업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재분배 수단으로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정책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중요하지만, 점점 양극화하는 노동시장 안에서 그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양극화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사회생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좀 더 평등한 임금구조를 가능케 하는 ‘노동시장 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조의 존재는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집단적 이해관계의 대표자들만이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이 엄청난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이들이 진정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시장 약자의 이해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만 그들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진보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정규직의 이익에만 매몰된다면 그들의 정당성은 잠식될 수밖에 없다. 현재 그리고 불안하게 다가오는 산업계 분쟁은 노동세력이 사회 전체를 위한 좀 더 포괄적인 동력이 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더 큰 사회적 포용성을 얻기 위한 노동조합 갱신에 중요한 국제적 교훈을 제공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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