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23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열린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국 프리즘] 최상원 | 영남데스크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는 동시에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진행됐다.
먼저 하나는 대우조선 사내협력업체 노사의 단체교섭이었다.
이날은 대우조선해양 110여개 사내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이뤄진 대우조선 하청노조(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파업 투쟁 51일째, 옥포조선소 제1도크 점거 투쟁 31일째였다. 31일 동안 유최안 부지회장은 1㎥ 쇠창살 감옥에 자신을 스스로 가뒀고, 박광수·이학수·한승철·조남희·진성현·이보길 등 결사대 6명은 15m 난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또 강봉재·계수정·최민 등 조합원 3명은 대우조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앞에서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아침 8시 시작된 교섭은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다가 오후 4시께 잠정 합의안을 만들었고, 조합원들은 90% 이상 찬성으로 이 합의안을 가결했다. 합의안의 핵심 내용은 △임금 4.5%(업체별 평균) 인상 △내년부터 설·추석 각 50만원과 여름휴가비 40만원 등 상여금 140만원 지급 △고용계약 최소 1년 단위 체결 △재하도급 금지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최우선 고용하기 위해 노력 등이었다. 노조는 애초 요구했던 30% 임금 인상을 이루지 못했고, 파업 피해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도 확답받지 못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교섭을 끝낸 직후 기자회견에서 “작년에 회사는 우리가 노조 조끼를 입고 교섭장에 들어갔다고 교섭을 거부했다. 금속노조, 이 이름 하나 합의서에 넣기 위해 6년을 싸웠다. 오늘 드디어 초라하고 걸레 같은 합의서지만 금속노조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옥포조선소에서 진행된 다른 하나는 대우조선 원청노조의 전국금속노조 탈퇴 조합원 찬반 투표와 개표였다.
대우조선해양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로 이뤄진 대우조선 원청노조(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21일 아침 6시부터 22일 오후 1시까지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조에서 탈퇴할 것인지를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했다. 앞서 지난 11일 전국금속노조에 함께 소속된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 투쟁에 반대하던 대우조선노조 일부 조합원들이 전체 조합원의 41.7% 서명을 받아서 전국금속노조 탈퇴를 위한 조합원 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전국금속노조가 “전국금속노조 규약상 해당 단위 총회를 통한 집단탈퇴는 불가하다”며 총회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전체 조합원 3분의 1 이상 서명을 받아 총회 소집 요건을 갖췄다며 조합원 총투표를 강행했다. 그리고 22일 오후 개표 도중 부정투표 의혹이 있다며 개표를 중단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여름휴가는 개표 다음날인 23일부터 새달 7일까지 2주일 동안이다. 이날 개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노조는 투표함을 봉인해서 거제경찰서에 맡기고 해산했다.
거제경찰서 관계자는 “경찰 업무 중에는 휴가 기간에 분실·훼손 우려되는 귀중품을 보관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휴가 기간 투표함을 맡아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희망버스를 타고 거제로 달려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외쳤다.
“인간의 탈을 쓰고 사람의 말을 하지만, 인간의 삶을 꿈꿀 수 없고 사람답게 살 수도 없는 신종 노예, 하청. 권리를 주장하면 불법이 되고, 노조를 만들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어디에도 취업이 안 되는 사람, 하청. 아빠가 하청이라고 아이도 하청이 되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엄마가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아이도 가난부터 배우며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최근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인 우영우 변호사는 “돈 앞에서 사람의 마음만큼 나약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실일까? 이날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돈을 포기하고 동지와 조직과 신념을 지켰다. 그렇다면 대우조선 원청노조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키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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