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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늘도 무사히, 나는 퇴근하고 싶습니다”

등록 2022-07-27 19:07수정 2022-07-28 02:34

“정씨 아재가 안 보이네요. 무슨 일 있습니까?” 하고 다른 아재들에게 물으니, 잠시 침묵 뒤 기가 차는 답변이 돌아왔다. “항만에서 화물 싣다가 죽어버렸다….” “회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하고 재차 물었지만, 아재들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서울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긴 20일 오후 건설노동자들이 서울 강동구 한 건설현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찬물로 땀을 씻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긴 20일 오후 건설노동자들이 서울 강동구 한 건설현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찬물로 땀을 씻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백재민 건설노동자

새벽 6시. 일출과 함께 하늘 빛깔이 불그스름할 즈음, 작업복을 챙겨 입고 인력사무소로 향할 때면 참새들만이 무던한 하루의 시작을 반겨준다. 새벽 댓바람부터 인력사무소 입구는 사무소장의 ‘간택’을 기다리는 막일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막일을 하려면 먼저 인력사무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품삯은 인력사무소가 원금인 10만원의 20%를 떼어간 뒤 나머지 7만~8만원 정도를 받는다. 내가 사는 경북 포항은 다른 지역들보다 임금이 적은 편이다.

인력사무소장은 ‘쓸 만한’ 사람들을 선택해 추린다. 여기서 ‘쓸 만한’ 사람들이란, 장기근속할 것 같은, 힘 좀 쓸 것 같은 사람을 뜻한다. 새벽부터 사무소장의 간택을 기다리던 사람 중에는 선택을 받지 못해 허탕만 치고 돌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들 중에는 힘없는 노인이 많다.

현장 형태는 제각각인데, 내가 작업했던 현장은 제철소나 항만 같은 곳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면, 간단한 작업 지시를 받고 바로 작업을 개시한다. 고된 노동이 두렵다가도 작업을 시작하면 몸이 어느덧 적응한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면 같은 그룹 안에서도 서열이 나뉜다. 인력사무소에 일을 맡긴 사쪽은 관리직 직원을 끼워넣어 일용직들을 감독하게 한다. 그러면 일용직들은 관리직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깐깐한 관리직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그날은 두배로 고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용직 사이에서도 ‘짬밥’에 따라 서열이 생긴다. 막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했을수록 에이스 대접을 받는다. 다양하고 위험한 작업을 오랫동안 섭렵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다.

정오쯤, 점심시간이 찾아오면 또 다른 하청업체에서 조리한 도시락을 일용직들의 손에 쥐여준다. 그러면 너 나 할 거 없이 땅바닥에 둥그러니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다. 수많은 노동자가 길거리나 땅바닥에서 식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관리직들은 식당에서 식사하니, 일용직들만이 남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식사를 한다. 작업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점심시간이야말로 막일꾼들의 세계가 계급사회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작업을 재개하면 너 나 할 거 없이 다들 늘어진다. 그 시간이 되면 관리직들은 눈치 봐가며 일용직들에게 휴식 시간을 준다. 그때 연장 쥔 손으로 땀을 닦아가며 마시는 물은 천상의 맛이다. 그 뒤 작업을 정리하고, 오후 4시쯤 일이 끝나면 먼지를 털어내고 관리직들 몰래 함께 담배를 태운다. 이때는 알 수 없는 ‘동료애’가 싹트며, 노동의 참맛을 함께 나눈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고된 노동을 하루이틀 함께 하다 보면 처음 만난 동료들과도 가까워지게 된다.

함께 일했던 이들은 용돈벌이 삼아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막일을 자신의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정규직들이 싫어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배정받아 일하다 보면 부러지고 깨지는 부상은 물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는 이들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부상과 죽음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안전교육을 받게 돼 있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산재보험이 있긴 하지만,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급여가 깎이기도 하고 그마저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부친 역시 막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부친은 얼마 전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인력사무소와 원청이 산재 책임을 부친 개인에게 떠넘겼고,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 부친은 졸지에 생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또 어느 날은 인력사무소에 나가보니 함께 일하던 정씨 아재가 보이지 않았다. 주말 빼고선 매일같이 인력사무소로 나오던 정씨 아재였다. “정씨 아재가 안 보이네요. 무슨 일 있습니까?” 하고 다른 아재들에게 물으니, 잠시 침묵 뒤 기가 차는 답변이 돌아왔다. “항만에서 화물 싣다가 죽어버렸다….” “회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하고 재차 물었지만, 아재들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일용직 막일꾼의 삶은 생존과 온전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삶이다. 공휴일이든 주말이든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과로사는 물론 언제 어디서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만연하다. 출근하면서도 ‘오늘은 무사히 퇴근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이유다.

점심 뒤 현장 한 귀퉁이에서 20~30분 눈 붙이는 짧은 시간, 휴게실 푹신한 소파에서 ‘단잠’을 자는 몽환을 꿈꾼다. 우리의 작업 현장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현장이 되기를….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안녕을 생각하는 작업 현장, 아직은 먼 미래일까.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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