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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돌봄도 치안처럼

등록 2022-07-31 18:21수정 2022-08-01 02:35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조기현 | 작가

‘112 신고하신 할아버지는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습니다. 112 신고에 감사드립니다.’

지난밤, 길거리에서 마주했던 할아버지의 소식이었다. 문자는 안도감을 함께 전해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 빠른 걸음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 틈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한 남성이 보였다. 맨발에다 바지도 거꾸로 입고 있었다. 치매로 길을 헤매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집은 가까이에 있어요?” 내 질문에 그는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휴대폰도 지갑도 없었다. 대신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길모퉁이 계단에 걸터앉았다. 나는 곧바로 112에 신고해서 위치를 알렸다. 어쩐지 그는 한번 잡은 내 손을 놓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한여름 밤에 유난히도 차가운 그의 손이었다. 덩달아 나도 그 손의 냉기에 더위를 식혔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나쁘지 않네요. 아주 추운 겨울밤이었으면 큰일 났을지도 몰라요.” 길어지는 침묵을 끊으려는 내 말에 그는 “맞아, 추우면 큰일 났을 거야”라며 답했다.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그가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고, 지금 아내는 자고 있다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집을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잠들어 있을 그의 아내를 떠올렸다. 잠에서 깨어나 열려 있는 현관문을 마주하는 심정이 어떨까.

나의 아버지에게 치매가 시작되고 집에서 함께 지낼 때 일이다. 활짝 열려 있는 현관문, 사라진 아버지.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첫새벽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지, 아침에 나는 제정신으로 출근은 할 수 있을지, 내일은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 밀려드는 불안과 무력감에 쩔쩔맸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의 아내가 더 깊은 잠에 들기를 바랐다. 아내가 잠에서 깰 때쯤이면 그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에 도착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곧 경찰이 왔다. 그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묻는 경찰 뒤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막상 그에게 인사도 못 하고 자리를 떴다. 다음날 그가 안전하게 집에 갔다는 소식에 안도감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지난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내걸었다. 전국 256개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됐고, 의료비 부담이 완화됐고, 장기요양서비스도 확대됐다. 지역사회에서 치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치매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진다. 길을 잃을 때를 대비해 경찰에 지문을 등록할 수도 있고 배회감지기를 착용할 수도 있다. 양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지난 5년이었다. 그럼에도 지난날 내가 느꼈고, 지난밤 거리에서 만났던 그의 아내가 느꼈을지 모르는 불안과 무력감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결국 돌봄의 첫번째 책임 주체가 가족이 아니어야만 한다.

112에 전화를 걸던 때를 찬찬히 되짚어본다.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이 출동했고 신고한 내용이 처리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치안을 유지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느끼던 것을 찬찬히 뜯어보니, 돌봄은 이렇게 될 수 없을지 고민하게 된다.

치안의 유지가 국가의 일이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방범대원으로 참여할 수 있듯이, 돌봄 또한 국가의 일이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112에 신고하듯, 돌봄 필요를 신고하고 출동해서 신고 내용을 대응하는 국가를 상상해본다. 그런 국가에서는 돌봄과 치매가 곧 불안과 무력감이 되지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치안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듯, 돌봄의 가치도 무시하지 않을 수 있다. 돌봄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을 때 자발적인 참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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