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은평구청은 ‘사랑벌레’(러브버그)에 대해 긴급 방역을 시행했다. 은평구청 제공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아직도 A를 하고 계십니까? 당장 B로 바꾸세요!”
이 나라의 광고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다. 시대의 변화를 왜 바짝 쫓아가지 못하냐는 힐난이 마케팅의 핵심인 것이 특징이다. 물론 새로 제시된 상품의 장점이나 기능과 같은 면모가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변화에 동참해야 하고 결코 뒤떨어져선 안 된다는 것, 설사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심지어는 돈을 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무엇이다.
변화에 대한 신봉 덕에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것도 남아나는 것이 없다. 오랜만에 옛 동네로 돌아가 보면 모든 것이 바뀐 상태를 우리는 정상으로 여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내놓는 정책은 수시로 변해서 종잡을 수가 없는 수준이고, 단어나 명칭도 그때그때 달라져서 쫓아가기 바쁘다. 핸드폰, 자동차 등 기술집약적 상품은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변화의 선두에 있고, 요즘 뭐가 ‘뜨는지’ 겨우 파악하고 나면 이미 옛날 일이 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문제로다. 특히 사상 또는 관점들이 그렇다. 피상적으로는 변화무쌍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저에 작동하는 기본적인 생각은 너무나 굳건한 경우가 많다. 특히 과학과 지식의 진보로 이제 인식이 바뀔 만한 충분한 저변이 확충되었는데도 미동도 안 하는 고정관념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바로 벌레라고.
벌레? 이 단어의 등장은 반드시 동일 또는 후속 문장에 박멸이라는 단어가 뒤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음과 같은 등식이 우리 사회에 기둥뿌리처럼 박혀 있는 것이다. 벌레=박멸. 산 전체에 살충제를 분사하는 만행을 저질러도, 나무마다 끈적거리는 테이프를 묶어서 무차별적으로 생물을 죽여도 ‘벌레’ 한마디면 만사 해결이다. 벌레는 단지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무엇. 이 무지하고 폭력적인 발상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나라. 이것이 우리의 현재 자화상이다.
지난달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에서 발생한 이른바 ‘러브버그 사건’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털파리의 일종인 이 곤충의 개체수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민원이 폭증하였고 결국 구청은 방역에 나섰다. 많게는 하루에 3회까지 민가와 녹지에 살충제를 살포하고 급기야 산림에도 직접 분사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곤충에 대한 무차별 난사를 한 것이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만 살다 사라지는,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오히려 유기물을 분해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이로운 생명체. 이것이 최근에 조금 많아졌다는 이유로,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다 몰살하려 한 것이다. 곤충은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너무나 중요한 생물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깡그리 무시되었다. 게다가 그렇게 한다고 몰살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과도한 방역이야말로 특정 곤충의 대량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고 서울대 신승관 교수는 말한다. 특히 자연에 직접 살충제를 뿌린다는 건 대놓고 생태계를 파괴하기로 아예 작정한 행위이다. 이로 인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곤충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다른 동물보다 오히려 심한 수준이다. 포유류, 조류, 파충류에 비해 8배나 빠르게 감소하고 있으며 곤충의 총 생물량은 매년 2.5%씩 추락 중이다. 자연 수분 매개자가 없어지면서 식량 생산에도 이미 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다른 생물 종의 멸종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전 지구적 위기의 와중에 있는데도 ‘징그러우니 죽여 달라?’ 얼토당토않은 소리이다. 생태적 무지는 더 이상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 벌레는 박멸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러브버그는 조금도 징그럽지 않다. 내 눈엔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