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창문 앞에 폭우로 침수된 물품들이 널브러져 있다. 연합뉴스
김민제 | 사회정책팀 기자
‘고양이집.’
경기도 외곽 한 공장단지 인근에 있는 박영미(가명)씨의 외딴집을 두고 이웃 주민들이 붙인 별명이다. 2020년 12월 기후위기로 안전을 위협받는 주거취약계층 취재차 박씨 집을 찾았다. 시멘트와 함석, 스티로폼, 벽돌, 비닐을 얼기설기 덧댄 박씨 집은 실제 고양이가 드나들 법한 움막처럼 보였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벽면의 온도는 9.2℃. 박씨는 집 안에서도 점퍼를 입었다. 언제 무너질지 몰라 거센 비바람이라도 예고된 날이면 가족과 함께 근처 교회로 피신해 한 밤을 보내고 왔다.
사나운 날씨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고양이집은 그래도 박씨 가족에겐 보금자리였다. 30여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온 박씨와 남편은 인근 과수원에서 일하며 판잣집 생활을 시작했다. 바람 들면 벽을 막고, 비가 새면 지붕 빈틈을 메웠다. 어느 여름엔 중고 에어컨을 샀고, 겨울엔 작은 난로를 놓았다. 그 집에서 유치원을 다니던 손녀는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반이 됐다. 박씨는 “워낙 형편이 없는 데서 지내느라 우리 애가 고생이 많았다”며 그 집과 함께해온 30년을 들려줬다. ‘고양이집’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박씨 가족의 안식처이자 잠재적 위험 지역, 아늑하면서도 위태로운 공간이었다.
그런 복잡다단함을 기사에 모두 담을 수는 없었다. 취재하며 맞닥뜨리는 일 대부분은 세상만사가 그렇듯 다면적이다. 하지만 모든 면을 다 담으려다간 기사 주제(야마)가 흐려지고, 분량이 넘어가고, 마감시간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극한기후와 부실한 주거지의 관계에 집중하며, 한꺼풀 아래 박씨 가족과 집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사정은 덮어놓아야 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박씨에게 판잣집은 어떤 의미였는지, 그런 취약한 집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역할 등 뒤늦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다면적인 세상을 납작하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은 수시로 인다. 평면적인 사건일수록 이해하기 쉽고, 기사를 쓰기도 쉽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알면 기사 쓰기 어렵다’는 기자들 사이 속언처럼, 기자는 한정된 분량 안에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단순하고 명료하기만 한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렇게만 할 경우 기사는 온전한 사실이 아니라 사실의 작은 일부가 되고, 삶의 한구석을 기꺼이 꺼내 보여준 취재원을 온통 슬프거나 기쁘기만 한 납작한 인간으로 기록하기 쉽다. 기자는 자괴감을 피할 수 없다.
새삼스럽게 지난 취재기가 떠오른 이유는, 최근 정부의 정책 혼란 때문이다. 지난 8일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이 침수돼 일가족 3명이 숨졌고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금지’ 정책을 발표했다.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맥락을 살피지 않았다’ ‘반지하 거주자들이 옥탑방, 쪽방, 고시원으로 가란 것이냐’라는 반박과 우려가 이어졌다. 그에 앞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은 만 5살 초등학교 입학 정책을 발표했다가 큰 혼란을 빚었고, 장관 사퇴로 상황은 겨우 일단락됐다. 맞벌이 부부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제시한 초등 전일제 대책도 교사들의 반발을 불렀고, 노동시간 단축 같은 큰 틀의 노력 없이 교육 영역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교훈만 재확인시켜줬다. 여러 이해관계와 빈곤, 불평등 같은 다면적·다층적인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내놓은 대책엔 ‘졸속’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사회는 소모적인 정쟁에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했다.
세상 모든 일에 한 면만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지지난 겨울 경기도 외곽 판잣집에서 내가 그러했듯, 얽히고설킨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너무 수고스러워 외면하고만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런 수고스러움을 회피한 채 내놓은 쉬운 진단과 대안으로는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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