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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디지털 현실로 이주하는 인류

등록 2022-08-25 17:52수정 2022-08-26 02:39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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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구성원 150명이 건물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조직이 있다. 매달 급여를 주는 방식은 아니고, 여건이 맞는 이들이 시간을 정해서 일하고 성과를 나눠 갖는 방식이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한 부분이 없다. 정규직이 아닌 구성원으로 짜인 비슷한 조직이 흔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몇가지 있다. 이들은 1년 넘게 일하면서 서로 대면한 적이 없다. 구성원의 연령대는 14살부터 28살 정도이며, 국적은 10개국 이상이다. 이 조직을 이끄는 대표의 나이는 14살, 중학교 1학년이다. 이들은 메타버스에서 일하고 있다.

필자는 이 조직을 인터뷰하면서 놀라움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반성의 마음도 들었다. 경영학을 배우지 않았고, 실무 경험이 없으며, 값어치 나가는 물리적 자산이 없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이런 조직을 이끈다는 점이 놀라웠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을 지도하는 필자는 150명이 참여해 실제 이익을 얻는 실습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중심이 돼 실습이 아닌 실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 수업 방식을 돌아봤다.

대학생 500여명이 모여 집단생활을 하는 거대한 땅이 있다. 여기에 정착한 이들에게는 대략 수십㎡씩이 제공된다. 그들은 그 땅을 바탕으로 각자 자신의 삶, 일을 꾸려간다. 카페를 여는 이, 종교시설을 만든 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이가 있다. 어떤 이는 그 넓은 땅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이동하도록 철도망을 만든다.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화폐가 있으며, 각자가 보유한 토지와 자원을 투명하게 거래한다. 이 땅은 대한민국에 있지 않다. 야생월드라고 명명된 그 땅은 메타버스 안에 존재한다.

야생월드에서 500여명 대학생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이는 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고 단정한다. 어떤 이는 이들이 현실의 삶을 메타버스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있다고, 미리 살아보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현실이 물리적 현실이 아닌 디지털 현실일 뿐이다. 필자의 지인 중에 혼자만의 작업실에서 음악을 만드는 이가 있다. 그는 외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과 메신저로 소통하고, 작업 결과물을 디지털 파일로 전송한다. 야생월드의 구성원과 이 작곡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디지털 현실에서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야생월드 구성원은 작곡가와 달리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필자 생각은 다르다. 만약, 야생월드에 누군가가 광고판을 세우거나, 야생월드의 라디오 방송을 외부 매체로 연결해서 송출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야생월드에서 사용하는 화폐가 기술적으로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는 아니지만, 디지털 화폐다운 가치를 가지게 된다.

지난해 12월 데뷔한 아이돌 그룹인 이세계 아이돌의 구성원, 제작자 모두는 메타버스 속에서 아바타로만 활동한다. 이 그룹은 이미 기존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을 확보했다. 이세계 아이돌을 기획했던 창작자 우왁굳은 최근 고멤 가요제라는 메타버스 가요제를 진행하고 있다. 총 7개 팀이 경합하는 방식으로 올해 6월 시작해서 9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필자는 고멤 가요제를 보면서, <엠비시>(MBC) 무한도전 프로그램에서 진행했던 가요제가 떠올랐다. 정확히 보면 무한도전보다 오히려 더 큰 판이 메타버스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례가 있으나, 지면 한계로 세가지 경우만 예를 들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필자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해서 지구의 모든 대륙으로 이주한 인류, 이제 그 인류가 디지털 현실인 메타버스로 이주를 시작했다고 판단한다. 그 땅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아직 단정하지 못하겠다. 그곳이 어떤 세상이 될지는 모두의 관심과 지혜에 달려 있다. 당신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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