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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핵관’ 논란과 미자하의 고사

등록 2022-09-05 18:15수정 2022-09-06 02:08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충남 천안시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2022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오미자주스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충남 천안시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2022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오미자주스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이주현 | 이슈부문장

‘윤핵관’부터 ‘검핵관’까지 대통령 취임 초기 벌어지고 있는 각종 ‘핵관’ 논란을 보면서 14년 전을 떠올렸다.

역대 대선 중 최다 득표율 차(22.5%포인트)로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에선 대통령 취임 한달 만에 심각한 내분이 터져 나왔다. 18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08년 3월 정두언·남경필 등 소장파 의원 55명은 ‘살아 있는 권력’의 친형,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촉구했다. ‘18대 총선 승리’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시작해 청와대 및 내각 인선 등에서 엠비(MB) 당선의 두 핵심 축인 이상득(영포라인)과 정두언(수도권 소장파) 간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집단적 반대에도 형님은 출마해 당선됐다. 정 의원은 엠비 정권 내내 형님 쪽과 불화했고, 19대 국회에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 의원은 이를 ‘형님 라인이 파놓은 덫’이라고 여겼으며, 비록 무죄로 최종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때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생명을 갉아먹을 정도로 깊은 마음의 병을 얻었다.

‘55인의 반란’은 정 의원을 비롯해 여러 사람의 불운으로 이어졌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당내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가 있었다. 한나라당 쇄신그룹의 명맥이 이어지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고, 이후엔 당을 좌지우지하는 친박근혜 세력을 견제하는 구실을 했다.

이와 비교하면 최근 핵관 논란의 후진성이 도드라진다. 철천지원수였지만, 형님과 정 의원은 최소한 ‘엠비 정부 성공’이란 공통의 목표는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선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표가 단단히 틀어쥐고 있던 당심을 돌리고 실용이란 엠비의 가치를 설파하기 위해 긴밀히 공조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에 뛰어든 지 1년도 되지 않은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세력은 급조된 이익공동체 성격이 농후하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이들로선 대선 기간 내내 윤석열 후보자를 자극하며 거침없는 밀당을 벌이던 이준석 대표를 제거하는 것이 ‘윤심’을 얻는 길이었다. 하지만 일처리가 미숙했다.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가 취재 카메라에 그대로 노출되는 어이없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알아서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수사를 매듭짓는 유능함과 ‘검사동일체’가 내면화된 일사불란함에 익숙했던 윤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지지율이 20%대(한국갤럽 7월 4주차~9월 1주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여의도 인사들의 ‘무능’과 ‘불충’이라고 간주할 법하다. 정치권과 끈이 닿아 있는 비서관급과 행정관급 등에 대한 대규모 감찰과 문책이 이어지는 배경엔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작금의 사태에 책임 있는 검찰 출신의 인사·법무·총무 라인은 쏙 빠진 채 실무진만 바꾸는 기이한 행태를 보면서 보수언론조차 ‘위는 놔두고 아래는 바꾸는 대통령실 쇄신’(<조선일보> 8월31일치 사설)이라고 비판한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당내 기반이 취약한 초·재선을 중심으로 공략하며 ‘신핵관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공식 발언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 시기 등 당내 현안에 관한 대통령의 생각이 흘러나오는 까닭이다. ‘윤심’을 간파한 초·재선들은 법원의 비상대책위원장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따라 최고위로 돌아가자는 중진들을 저지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황제의 신임을 놓고 다투는 막장 시대극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어차피 현대사회의 정당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니 전국시대의 저서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를 인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위나라의 임금 영공의 총애를 받던 아름다운 소년 ‘미자하’는 함께 산책하다가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곤 너무 맛있어서 영공에게 건넸다. 영공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면 자기 몫을 주겠느냐’며 흡족해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아름다움이 사그라들자 영공은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준 불경죄를 물어 뒤늦게 미자하를 벌하였다. 한비자는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으나 변한 것은 군주의 마음’이라고 짚었다. 애증지변(愛憎之變). ‘윤심’에 나부끼는 각종 핵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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