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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포항은 왜 침수됐는가

등록 2022-09-15 19:25수정 2022-09-16 02:38

누가 어떤 목적과 관점으로 재난을 조사하는지에 따라 그 원인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같은 날 같은 환경에서 발생한 사건들이지만 사망 사고의 책임을 가리는 조사와 철강 수급을 회복하기 위한 조사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근래 발생한 강한 태풍과 폭우가 앞으로 더 빈번해질 심각한 기후재난의 일부인지 검토하는 혜안은 기대하기 힘들다.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지난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리 냉천이 불어나면서 바로 옆 식당 건물 바닥과 마당이 유실돼 있다. 연합뉴스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지난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리 냉천이 불어나면서 바로 옆 식당 건물 바닥과 마당이 유실돼 있다. 연합뉴스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지난주 태풍 힌남노가 포항에 남긴 상처는 우리가 재난을 대하는 관점의 문제를 제기한다. 일곱명의 목숨을 앗아간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와 큰 재산 피해를 낸 포항제철소 침수는 하나의 사건인가 두개의 사건인가? 같은 날 같은 도시의 두 장소에서 발생한 침수 피해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서로 다른 피해를 유발한 별개의 원인들에 주목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기다려보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포항에 닥친 재난의 원인을 제대로 조사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

만약 두 침수 사건을 구별해서 생각하려 한다면, 아마도 그 차이는 인명피해 유무에 있을 것이다. 주차장에 있는 차를 옮기려 내려갔던 주민들의 사망을 조사해야 하는 경찰은 여러 분야 전문가로 자문단을 꾸려 침수 원인을 밝혀낼 계획이라고 한다. 건축, 전기, 방재, 의료, 법률 등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을 모았다. 주차장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도 디지털 포렌식 기술로 복구해 사고 당시 현장을 파악한다고 한다. 차를 옮기라는 안내 방송이 나간 경위와 배수펌프 같은 아파트 시설의 작동 여부도 확인이 필요하겠다. 당연하게도 조사는 희생자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물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철강 생산 중단이 심각한 문제인 포항제철소에 대해서는 원인 규명보다는 제철소 복구와 재가동을 위한 노력이 주로 부각됐다. 추석 연휴에도 설비에서 흙을 닦아내고, 전기 공사를 하고, 가정용 드라이어까지 동원해서 기계를 말렸다고 한다. 고로가 재가동됐다는 다행스러운 소식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철강 수해복구 및 수급점검 티에프(TF)’와 ‘민관 합동 철강수급조사단’을 구성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생산 정상화 시점을 예측하는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빠른 대응처럼 보이지만 이런 점검과 조사의 결과가 널리 공유돼 추후 대규모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 조사 목적이 철강재 수급 차질을 줄이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 인명 사고와 제철소 가동 중단 사태를 포항에 폭우가 내린 날 발생한 하나의 큰 사건으로 이해하려면 누가 무엇을 조사해야 할까? 주민들과 몇몇 언론에서 제철소와 아파트 단지 사이를 흐르는 냉천의 문제를 지목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시도로 볼 수 있다. 주민들은 2012년부터 시행한 냉천 정비사업으로 하천이 좁아져 많은 비가 올 때 쉽게 범람했다고 의심한다. 물론 포항시는 이번 사태가 하천 폭이 줄어든 것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천재지변과 인재 사이의 익숙한 대립 구도다. 이번 침수는 9월6일 하늘에서 내린 비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10년 전부터 지역에 쌓여온 문제들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포항의 아파트와 제철소가 오랫동안 하천과 맺어온 관계가 침수 사태에 영향을 주었는지 판정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주차장 사망 사건 수사를 위해 경찰이 꾸린 자문단이 이처럼 광범위한 인과 관계에 대한 분석을 떠맡기는 어렵다. 경찰의 관심은 누가 이 사건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머물기 때문이다. 당장 제철소 재가동이 절실한 정부와 경영진도 제철소가 냉천 옆에 자리를 잡고 작동해온 수십년의 역사에서 원인을 찾고 교훈을 얻을 여유는 없어 보인다. 근래 발생한 강한 태풍과 폭우가 앞으로 더 빈번해질 심각한 기후재난의 일부인지 검토하는 혜안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누가 어떤 목적과 관점으로 재난을 조사하는지에 따라 그 원인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같은 날 같은 환경에서 발생한 사건들이지만 사망 사고의 책임을 가리는 조사와 철강 수급을 회복하기 위한 조사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전자에서 우리는 처벌할 사람을 지목할 수 있고 후자에서 우리는 산업계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사들은 애초에 그 하천이 왜 쉽게 범람하여 아파트와 제철소를 덮칠 수 있었는지 따지는 일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 포항의 재난에서 우리가 꼭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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