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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 대통령의 ‘이xx’ 외교 담론과 ‘문재인 때리기’ [정의길 칼럼]

등록 2022-09-26 16:52수정 2022-09-27 02:37

지금까지 대통령 외교에서 논란은 주로 상대의 홀대나 의전 실수였다.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뱉은 말이다. 그 실수조차도 정쟁 구도로 만들고 있다. 문재인 때리기를 위해서 그가 검사 시절에 즐겨 했다는 별건 수사, 가지치기 수사 기법이 외교에서 작동하고 있다.

5박7일 일정의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이 XX’ 발언 논란과 관련된 기자들 질문에 사과나 해명 없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5박7일 일정의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이 XX’ 발언 논란과 관련된 기자들 질문에 사과나 해명 없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2001년 3월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디스 맨”(이 양반)이라는 말을 들었다. 부시는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이지 맨”(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부시가 두 대통령을 깔보는 말을 했다는 여론이 일었다. 김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디스 맨 표현에 대해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하나 불쾌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끼워놓고는 북핵 문제에 강경대응을 하려고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합의를 뒤집을 때였다.

부시가 깔보려고 이런 말을 했는지는 논란의 영역이다. 부시는 2002년 2월 미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도 ‘디스 맨’이라고 호칭했으나, 문제 되진 않았다. 미 국무부에서 27년간 통역을 하며 한-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김동현씨는 2005년 은퇴 회견에서 ‘디스 맨’이나 ‘이지 맨’은 얕잡아 본 말이 아니고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부시는 나중에 노 대통령 서거 뒤 자신이 그린 초상화를 선물했다.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문제는 국내였다. 문제의 발언은 부시가 했는데, 욕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더 먹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김대중, 노무현이 대접도 못 받고 다녀, 국격을 훼손한다’는 조롱이 난무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정치권이 이런 조롱에 노골적으로 합류하지는 않았다.

홍사덕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디스 맨과 관련해 백악관에 항의편지를 보냈다. 부시가 북핵 문제에서 입장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2003년 박주천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미국 방송과의 회견에서 노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영원히 ‘이지 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급히 취소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 정상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을 못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불쌍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야당이 노골적으로 조롱하지는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아침에 서민들의 대중적 식당에서 수행원들과 식사를 하는 이른바 ‘혼밥’ 논란으로 금도는 깨졌다. 자유한국당은 중국에 ‘조공외교’를 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 외교’를 하고도 푸대접받아 혼자 아침을 먹는다는 조롱과 공격을 가했다. 그 이후 해외순방에서도 김정숙 여사의 의상 등을 놓고 트집을 잡고 조롱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 여왕 장례식에서 ‘조문 없는 조문외교’,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대한 ‘스토킹 회동’,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48초 만남’에 이어 ‘이 ××’, ‘쪽팔려’ 발언으로 조롱과 맹공을 당하고 있다. 앞서, 김건희 여사가 나토 정상회의에서 패션과 장신구, 의전 실수로 조롱을 당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간곡히 부탁드린다. 대통령 외교 중에는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풍토를 만들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쪽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이 외교를 전 정부 때리기 수단으로 본다는 의문이다. 그는 후보 당시 ‘사드 재배치’를 한줄 공약으로 제시한 때부터 외교 사안을 문재인 때리기로 일관한다. 일본 총리에게 만나자고 매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망가뜨린 한-일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명분이다. 사실 한-일 관계 악화는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어쨌든, 윤 정부 들어서 한-일 관계는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 한국에 큰소리를 치는 관계로 역전됐다.

이번 순방에 앞서, 그는 <뉴욕 타임스> 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교실에서 특정한 친구에게만 집착하는 학생”이라며 기존의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협상을 ‘정치적 쇼’라고 비난했다. 그가 국내외 연설에서 ‘자유 연대론’를 줄곧 외치는 것도, 문 정부가 중국과 북한에 경사됐다는 것을 비난하는 반어가 아닐 수 없다. 윤 정부는 자신들 나름대로의 대외정책을 펼치면 된다. 굳이 전임 정부의 외교에 대한 ‘디스’를 앞세운다면, 이와 관련된 국가에 약점 잡히고 외교 리스크만 키울 뿐이다. 지금 벌어진 ‘외교 참사’가 그 결과이다.

이런 의문은 윤 대통령이 토해낸 ‘이 ××’가 미국 의회가 아니고 한국 야당이라는 해명으로 더욱 짙어진다. 지금까지 대통령 외교에서 논란은 주로 상대의 홀대나 의전 실수였다. 이번에는 윤 대통령이 스스로 뱉은 말이다. 그 실수조차도 전임 정부 세력 쪽과의 정쟁 구도로 만들었다. 오로지 문재인 때리기를 위해서 그가 검사 시절에 즐겨 했다는 별건 수사, 가지치기 수사 기법이 외교에서도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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