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력의 심장부, 권부의 상징….’
한때 회자한 대통령비서실을 가리킨 세간의 수식어다. “파워는 권력자의 지근거리에 달려 있다”고 했던가. 오랫동안 ‘청와대’로 불렸고, 이제는 ‘대통령실’로 호명되는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들의 집합체일 뿐이지만,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신다”는 그 자체로 막강한 정치권력, ‘권부’로 인식돼왔다.
실제로도 그랬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는 대통령비서실 소속 구성원들의 권력행사를 둘러싼 일화가 수없이 많다. 대통령중심제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권력은 대통령과의 거리, 만남에 비례했다. 비서실장과 실세 수석의 ‘호가호위’나 비서실 내부 암투, 또는 ‘문고리 권력을 둘러싼 은밀한 ‘궁정비화’’ 부류의 이야기들이 넘쳐난 이유다. 하지만 대통령비서실은 이런 음습한 권력투쟁 조직만은 아니었고, 아니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결정이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전략적인 결정에서부터 누구와 무엇을 두고 회담할지, 심지어 누구와 만나 식사할지까지 끊임없는 결정의 연속이다. 이런 대통령의 결정은 국민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며,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며, 때로는 정치적 논쟁과 외교적 갈등을 유발한다.
대통령은 이들 결정에 많은 이의 조력을 받는데, 비서실이 일차적 조언자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단순한 ‘비서’나 ‘조언자’가 아니었고,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책임 또한 매우 무겁다. 집권 초부터 잇따른 현 윤석열 정부의 ‘외교참사’와 ‘정책 혼선’을 두고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 정책 이해 부족과 더불어 대통령비서실의 무능이 그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이 관여하는 국정 현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통령보다 비서실장이 훨씬 더 많은 일을 접하게 돼요. 수석(비서관)들도 마찬가지고요.”(문재인 전 대통령)
“나의 63권 수첩에는 사건 관련 내용은 5%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는 지난 3년간 대통령과 함께 고민해서 이루어낸 수많은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다. 창조경제,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 개혁, 규제 개혁 등….”(안종범 전 경제수석)
“정책토론을 수시로 거의 매일 했습니다. 정기회의만 해도 일주일에 4번입니다. 바깥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거의 웬만한 정책을 다 스크린합니다. 여기서 방향이 정리되면 부처로 전달됩니다.”(김연명 전 사회수석)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국가 모델은 한국형 복지국가를 선제적으로 만든다고 할까요. (…) 이번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복지국가 모델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안상훈 사회수석)
노무현·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시절 대통령실(청와대) 핵심으로 일한 이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에서 대통령비서실과 그 구성원들이 중요한 정책 결정자임을 증언한다. 이는 역대 대통령이 지향했던 가치와 리더십은 다를지언정, 대통령비서실의 본질적 특성은 공통적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른바 ‘브이아이피(VIP) 말씀’이라고 일컫는 ‘대통령의 뜻’과 주요 국정과제를 각 부처에 전달, 지시하는 등 국정 전반을 관리하면서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힘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대통령비서실의 법적 근거는 정부조직법 14조다. “1.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은 비서실을 둔다. 2.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 및 비서관 등은 일상적으로 대통령과 접촉하고 수시로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들이 대통령에게 어떻게 조언하며, 어떤 정보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실행과 폐기,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많은 대통령의 결정은 대통령의 결정이지만, 실은 이들 비서진의 의사결정이다. 경우에 따라 비서실장이 국무총리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고, 수석 또는 비서관이 장차관을 뛰어넘어 부처 실무진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기도 하는 배경이다.
2013년엔 비서실에서 국가안보실이 떨어져 나와 비서실장과 동급인 안보실장이 대통령의 위기상황 관리 등을 총괄 보좌하도록 했는데, 이후 통일·외교·국방 관련 사안에서 국가안보실장이 존재감이 커지면서 주무부처 장관을 압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포함)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정책 결정자임에도 이들의 정책 결정 과정은 대부분 잘 드러나지 않으며, 또 제대로 평가받거나 검증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및 비서관들은 “누구나 그런 줄 알지만, 누구도 그 구체적인 실상을 잘 모르는” 정책 결정 관여자들이며,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에 평가받거나 심판받지도 않는다. 가끔 언론과 여론이 문제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대통령이다.
대통령비서실은 어떻게 시민의 삶과 관련한 정책의제를 제기하며, 최종적으로 결정하는가? 또 이들의 정책 형성 및 결정 과정은 얼마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가? 대통령비서실의 정책 결정 과정은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또 하나의 ‘블랙박스’다. 동시에 대한민국 정책 과정의 질적 이해와 더 나은 국정운영을 위해 반드시 톺아봐야 할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청와대 정부>란 저서에서 이런 대통령비서실 중심의 만기친람형 국정운영과 정책 결정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그는 문재인 행정부의 국정을 “청와대가 국민 여론을 직접 이끌고, 권력의 중심에 자리 잡은” 청와대 정부라며 이는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공약을 파기하고, 결과적으로 내각과 정당의 역할을 약화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잣대에서는 윤석열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 윤 대통령 또한 대선후보와 당선자 시절 “헌법 정신에 충실하게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하겠다”고 거듭 공약했지만, 내각 인선 과정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총리나 장관의 존재감을 좀체 느낄 수 없었다. 서울 여의도(국회)나 세종 관가에는 ‘경제부총리보다 (대통령실) 실장과 수석이 훨씬 세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 지 오래고, 최근 한 경제부처 대변인 경질을 두고서도 대통령실이 해당 부처 팔을 비튼 결과라는 말이 파다했다.
‘선출되지 않은 비서들’의 과도한 권한 행사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박상훈 박사는 저서에서 “청와대 실장과 수석제 폐지하고 그 대신 당의 정책위원회가 중심이 돼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내각을 지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더 낫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임기 안에 관료의 저항 등을 극복하고 개혁의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선 대통령 주변으로 권력을 집권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어쩌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며 반박한다.
문재인 정부의 이철희 전 정무수석도 최근 필자와 대화에서 “청와대가 그러면 연락이나 하고 전화나 받으란 말이냐”며 “청와대 정부론은 국정운영과 개혁이 내각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허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일축했다. 그렇다면 ‘청와대 정부’가 아니고서는 개혁을 실현할 방법은 없는가?
대통령비서실을 둘러싼 이런 갑론을박은 단순히 국정운영에 대한 이상과 현실, 또는 관점의 차이로만 치부할 수 없다. 대통령중심제 속에서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통치 방식에 대한 고민과 논쟁의 바탕에는, 정당과 의회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의 주체로서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책임정부와 책임정치를 감당할 자격이 있는지 문제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개헌 등을 포함한 통치구조 변환이나 정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대통령비서실이라는 ‘블랙박스’는 언론과 시민사회 등의 지속적인 관심과 주목, 감시와 분석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회정책 이슈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한겨레>에서 팀장과 부장, 논설위원, 부국장 등을 거쳤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영국 편>,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편저),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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