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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석기의 과학풍경] 장내미생물도 신토불이?

등록 2022-09-27 18:27수정 2022-09-28 02:37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6개국 1225명의 게놈을 분석해 계통도를 만들면 대륙별로 묶이고 대륙에서는 나라별로 나뉜다(왼쪽). 우리가 겉모습에서 짐작하는 차이를 잘 반영하는 결과다. 한편 이들의 분변을 분석해 만든 장내미생물 종의 계통도 역시 꽤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오른쪽). 사람과 장내미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며 함께 진화했다는 뜻이다. <사이언스> 제공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6개국 1225명의 게놈을 분석해 계통도를 만들면 대륙별로 묶이고 대륙에서는 나라별로 나뉜다(왼쪽). 우리가 겉모습에서 짐작하는 차이를 잘 반영하는 결과다. 한편 이들의 분변을 분석해 만든 장내미생물 종의 계통도 역시 꽤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오른쪽). 사람과 장내미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며 함께 진화했다는 뜻이다. <사이언스>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2년 넘게 인류를 괴롭히던 코로나19 팬데믹도 끝이 보이는 듯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을 없앴고 우리나라도 이번주부터 실외 착용을 완전히 없앴다.

우리나라는 확진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치명률은 0.11%로 세계 평균 1.06%의 10분의 1이다. 초반엔 엄격한 거리두기로 잘 버텼고 백신이 보급된 뒤 병원성이 약한 오미크론이 돌 때 대다수가 감염된 게 주된 이유이겠지만 우리 식단이 한몫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김치의 재료(배추, 무, 파)와 양념(고추, 마늘, 생강)에 들어 있는 다양한 피토케미컬과 발효 유산균이 면역력을 향상해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 김치 수출액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김치를 먹는다고 우리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까.

2020년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체의 소화 관련 유전자는 지난 수천년 동안 조상들의 식생활에 적응해와 낯선 음식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구인은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 효소가 부족해 탄수화물 비율이 높은 채식 위주 식사를 하면 장에 탈이 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성인 대다수는 우유의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미미해 많이 마시면 배탈이 난다.

그런데 장에서 공생하는 미생물도 사람과 함께 적응해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주 <사이언스>에는 유럽(독일, 영국), 아시아(한국, 베트남), 아프리카(카메룬, 가봉) 6개국 1200여명의 분변 시료에서 장내미생물 게놈을 해독한 연구가 실렸다. 그 결과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균주라도 대륙에 따라 차이가 컸고 한 대륙에서도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이는 사람 게놈을 분석했을 때 차이와 비슷했다. 수만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지구촌 곳곳으로 퍼진 사람과 함께 장내미생물도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진화했다는 얘기다. 이번 연구 결과는 우리가 건강을 위해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을 복용할 때도 균주의 기원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4월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이런 가정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구촌 많은 곳에서 아이들이 극심한 영양부족에 시달리며 매년 300만명 넘게 사망한다. 이들에게 항생제를 투여하고 영양을 공급해도 생각만큼 효과가 없는데, 건강한 아이들의 장에 많은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 같은 유익균이 적고 대신 유해균이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영양 결핍 아이를 대상으로 프로바이오틱스(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를 투여하면 장의 염증 수치가 떨어지고 살이 붙는다. 이 제품의 균주는 미국인 분변에서 얻은 것인데, 만일 건강한 방글라데시 아이의 분변에서 얻은 균주로 만든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했다면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실제 이렇게 얻은 한 균주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서양인의 장에 사는 균주보다 식물 유래 다당류를 흡수하고 소화하는 효율이 높았다.

앞으로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할 때는 균주의 기원도 따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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