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오전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정유경 | 디지털뉴스부장
윤석열 정부의 ‘실수’를 지적하는 입을 틀어막고 싶다면 엠비시(MBC)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포털, 트위터와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조문, 외교 참사 논란이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젠 제74회 국군의 날 영상 때문에 에스엔에스가 시끌시끌하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시작하기 전 “부대 열중쉬어”를 말하지 않았다는 ‘논란’ 때문이다.
소리 내 말한 것도 하루하루 휙휙 뒤바뀌는 세상이라 굳이 ‘논란’을 붙여봤다. “대통령이 별도로 구령하지 않아도 제병지휘관은 스스로 판단해 구령할 수 있다”는 해명(尹, 국군의날 ‘열중쉬어’ 생략…野 “면제라 이해해야?” [영상]/국민일보) 보도도 있었지만, 언론사에 또 진상규명을 요청할지 모르니. 소리 전문가가 화면을 분석해 대통령이 입을 벌렸을 때 “열”이라고 발음하고 있었다고 증언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병사들의 고충이 크지 않았다면 다행인 일이라 넘겼지만, 누리꾼들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라이브로 송출된 현장 영상이 퍼지자, 발 빠른 유튜버는 역대 대통령들의 ‘열중쉬어’ 총망라 영상을 편집해 올렸다. 긴 영상을 보기 힘든 현대인들을 위한 짧은 동영상인 ‘쇼츠’도 따라붙었다. 조회수가 수익과 연결되는 ‘조회수 경제’ 시대 유튜버들의 대응은, 자본주의 사회답게 기민하기 짝이 없다.
그에 비하면 기성 언론 보도는 한발 늦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외교’ 때도 그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 ‘48초 회담’ 때도 그랬다. 현장 기자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 가치에 대한 내부 판단을 거친다. 그러다 보면 “기레기들은 지금까지 보도 안 하고 뭐 하느냐”는 성미 급한 조롱이 카카오톡과 에스엔에스를 뒤덮을 때쯤 기사가 나오기 십상이다.
지난 미국 순방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짧은 만남 직후 불거진 ‘비속어 논란’은 초반 대통령실의 우왕좌왕 해명이 도리어 의구심과 국민적 관심을 키운 격이 됐다. 한국에서 논란이 불거졌던 22일, 엠비시 유튜브 채널의 해당 영상 조회수는 저녁 7시10분께엔 390만이었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는 미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 야당을 일컫는 것이었다며 “다시 들어보라”고 한 뒤, 이튿날 아침 조회수는 530만으로 늘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김은혜가 친정 회사 조회수 올려줬다”는 조롱 섞인 반응이 나왔다. ‘바이든’ ‘날리믄’ ‘발리믄’을 두고 전국민 모국어 듣기평가가 벌어졌다. 여권은 뒤늦게 ‘정언유착’ 프레임을 들고나와 엠비시를 콕 집어 겨냥했지만, 싸늘해진 중도층 민심은 도통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치솟는 물가와 환율, 전쟁 위협을 다룬 뉴스만큼이나 윤 대통령 언행에 관한 뉴스들이 포털 ‘많이 본 기사’에 오르는 실정이다.
왜 누리꾼들은 대통령 태도에 분노할까? 댓글창의 성난 민심은 실수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자세를 지적한다. ‘ 野 “경례 받고 ‘열중쉬어’ 안한 尹, 장병들 세워둘 참이었나” ’라는 중앙일보 기사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 “참모진이 실수해도 국민에게 사과하는데, 본인이 사고를 쳐 놓고 사과도 안 하는 대통령은 처음이다.”(eltm****, 이하 네이버) “아기가 언제 걷는지도, 아나바다도 모른다. 모르면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는데….”(nys0****) 한겨레 기사에도 마찬가지 댓글이 달렸다. “민생·경제·군사·안보 어느 것 하나 공부하고 준비해서 보여주는 모습을 볼 수 없다.”(leei****) “전쟁이나 국가부도 등 위기에 거짓과 왜곡으로 갈팡질팡 대처할 게 뻔해 공포감을 느낀다.”(hope****)
“언론 탓, 야당 탓, 검찰 탓, 남 탓 좀 그만하십시오. △△사태, 온 국민이 분노한 거는 예외 없는 사실인데 ○○○ 대통령은 뭐라고 했습니까? 언론보고 성찰하라 그랬습니다. (…) 가짜뉴스 타령하고 그 언론 때려잡겠다고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 △△ 탓을 야당만 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다 했습니다.”
국민의힘 엠비시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박대출 위원장이 야당 시절 지난 정부에 했던 성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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