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의 정담]
08 _대통령비서실1
09 _대통령비서실2
10 _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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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통령 보좌조직인 대통령실 중심의 정책 결정 시스템이 가져오는 부작용이다. 그것은 “의회와 정당, 내각 등 책임 정치의 중심 기관들이 ‘청와대 권력’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하여 이들이 정책생태계의 주요 정책결정자로서 자율적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실 중심의 정책과정은 그 기회를 허용치 않는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대통령비서실은 어떻게 시민의 삶과 관련된 정책의제를 제기하며, 결정하는가? 또 이들의 정책 형성 및 결정 과정은 얼마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가?”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의 또 하나의 ‘블랙박스’인 대통령비서실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단순히 정책 논의가 폐쇄적이란 점에만 있지 않다.
대통령실 중심의 정책 결정 방식이 때로는 정부 부처가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집권 정당과 여당 의원들조차 대통령실의 “수동적 하위 파트너”가 되도록 한다는 게 핵심 논점이다. 나아가 이런 방식이 정책에 대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주요 정책의제를 일방적으로 결정 또는 무산토록 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두 ‘정책 실패’ 사례는 짚어볼 만하다. 먼저 국민연금 개혁 논의와 무산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 노후소득보장의 근간인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시작 이래 지속해서 ‘개혁’의 압박을 받았다. 애초 기여보다 급여가 많게 설계된 탓에 시행 초기부터 재정불안에 직면한데다, 존재 이유인 소득보장 기능 또한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1차 연금개혁’의 산물로 개정된 국민연금법은 정부가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이를 기초로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연금개혁 논의가 불거지게 하는 또 다른 강제 요인이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지금껏 2003년, 2008년, 2013년, 2018년 네차례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토대로 연금개혁이 실제 이뤄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의 이른바 ‘2차 연금개혁’뿐이다. 당시 개혁의 방향은 기초노령연금 도입 등 일부 확대도 있었지만, 1차 때와 마찬가지로 급여를 깎는 ‘축소’의 과정이었다.
2008년 이후는 모두 알다시피 국민연금 개혁이 없는 ‘무위의 시간’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2018년 4차 재정계산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란 공약과 달리 연금개혁은 없었다. 논의만 무성하게 이어진 가운데, 2개의 안이 4개로 바뀌었다, 다시 3개로 병렬 제시되는 과정만 이어졌을 뿐이었다.
2018년 8월 연금제도발전위원회의 2개의 안, 2018년 12월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담은 4개의 안, 그리고 2019년 8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발표한 3개의 안 등 각기 다른 틀의 연금개혁 논의에 따른 복수의 안이 제시됐을 뿐, 어떤 합의도, 단일안도 도출하지 못했다.
2019년 10월 한때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국회의 종합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단일안을 만들 수 있을지 토론 중”이라고 말했으나, 이듬해 6월 기자간담회에서는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단일)안은 없고, 다음 대선에서 의제로 부각돼 해결책을 찾아갔으면 한다”며 사실상 연금개혁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
국회의 연금개혁 시간은 아예 없었다. 19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점한 20대 국회에서도 무려 127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단 한차례도 의미 있는 연금개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흔히 연금개혁을 두고서 ‘코끼리 옮기기’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비유인데, 이처럼 어려운 일이기에 최고 정책결정자의 확고하고도 일관된 의지, 치밀한 사전 준비와 전략, 무엇보다 관련 정책행위자들과 이해관계자들 간의 타협과 합의를 모색하는 집요하고 지속적인 연금정치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당시 문재인 정부는 과연 연금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연금개혁, 과연 못 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사실상 연금개혁을 포기하거나 방치한 것은 아닌가? 정부와 국회는 왜 그렇게 무책임했을까?
여러 증언을 들어보면, 이 모든 질문은 ‘청와대의 뜻’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연금개혁에 소극적이었으며, 특정 시점에는 그 뜻이 여당과 보건복지부, 국회에 이르기까지 전해지면서 문 정부의 연금개혁 논의가 결국 지지부진하거나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당시 연금개혁과 관련된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때 윗선에서 이걸 정치적 의제화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윗선’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때’는 경사노위 연금특위가 연금개혁 논의를 시작한 2018년 10월 직후인 그해 말께를 가리킨다. 물론 이 연금특위의 논의도 소득 없이 2019년 8월 끝났다.
이 관계자는 “연금개혁이 성공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하면 모든 정치사회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정책) 성과는 안 나타나는 것을 윗선에서 우려했고, 이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데다, 코로나로 인해 추진 동력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이와 관련해 “평소 연금개혁에 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던 장관이 어느 날 청와대 회의에 다녀온 뒤부터는 말문을 닫거나 아꼈다”고 증언했다. 민주당 관계자의 증언도 맥락이 일치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2018년 8월 연금제도발전위원회의 보고서가 발표 전 언론에 미리 공개돼 여론이 시끄러웠을 무렵, 당 관계자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외부에서 대책회의를 한 바 있다”며 “이후부터 당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당 관계자의 증언은 비교적 꽤 이른 시기부터 ‘청와대’가 연금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음을 확인케 하는 대목이다.
이들 증언은 연금개혁 논의에 관한 실질적인 의사결정 주체가 ‘청와대’ 즉 대통령실이었음을 여실히 읽을 수 있다. 복지부는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연금개혁에 대한 ‘청와대 윗선’의 소극적인 태도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기실 연금개혁은 ‘당·정·청’(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합심해 총력을 기울여도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윗선’이 정책 주도권을 쥐고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마당에는 결코 힘 있게 추진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혁 실패에 대해,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정부의 무책임성과 준비 부족”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연금개혁을 공약하고도 복지부 차원을 넘어서는 대통령실의 적극적인 준비와 관계부처, 야당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했지만 별 준비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고, 4차 재정재계산 이후 여론이 악화한 뒤에서야 모든 걸 국민 논의(사회적 대화)에 맡긴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2020년 ‘의사 파업’을 낳은 의대 증원 확대 정책 사례도 대통령실의 정책 결정 과정과 관련해 복기해볼 만한 정책 실패 사례다.
그해 9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료 체계 개선은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부닥친 우리의 보건의료 현실을 고려하면 시급히 이뤄내야 할 정책이었다. 이 정책 또한 당시 대통령실이 주도했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당 정책은 그때 청와대에서 수십차례 내부 찬반 토론을 거쳐 확정한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은 활발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통령실 비서관, 관료와 전문가들 사이의 ‘청와대’ 내부에서만 이뤄진 논의였다.
주무 부처나 여당이 주최한 사회적 논의 과정도 충분치 않았고, 무엇보다 이해당사자인 의사 집단의 의사를 확인해보는 논의도 없었다.
보건복지부의 공식 발표 뒤, 의대생들의 국가 고시 거부, 대거 집단휴진 등 ‘의사 파업’이 벌어지자 그제야 수세적인 ‘의정 합의’를 거친 뒤, 결국 해당 정책은 철회되고 말았다.
연금개혁과 의대 증원 확대란 두 ‘정책 실패’ 사례는 대통령실의 일방적 정책 결정 과정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민국 정책사에 이런 사례가 비단 두 정책뿐이겠는가? 물론 이와 반대로 대통령실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성공한 정책 사례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 보좌조직인 대통령실 중심의 정책 결정 시스템이 가져오는 부작용이다. 그것은 “의회와 정당, 내각 등 책임 정치의 중심 기관들이 ‘청와대 권력’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것”(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이다. 하여 이들이 정책생태계의 주요 정책결정자로서 자율적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실 중심의 정책 과정은 그 기회를 허용치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시스템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윤 정부에서는 지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 즉 ‘애니띵 벗 문’은 무성하지만, 숫제 ‘대표 정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있다.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회정책 이슈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한겨레>에서 팀장과 부장, 논설위원, 부국장 등을 거쳤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영국 편>,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공저),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편저),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편저) 등이 있다.goni@hani.co.kr
2018년 8월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성주호 재정추계위원장의 2018년 국민연금 재정계산 장기 재정 전망 결과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회정책 이슈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한겨레>에서 팀장과 부장, 논설위원, 부국장 등을 거쳤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영국 편>,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공저),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편저),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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