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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진순 칼럼] 민영화? 사유화라고요

등록 2022-10-11 18:27수정 2022-10-12 09:51

민영화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사유화(privatization)이다. 공영방송을 사유화해서 사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게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된다는 말인가? 사유화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쓰는 민영화란 용어는 그 자체로 기만적 레토릭이다.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 박대출 ‘엠비시(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티에프(TF)’ 위원장(오른쪽)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28일 문화방송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보도와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 박대출 ‘엠비시(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티에프(TF)’ 위원장(오른쪽)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28일 문화방송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보도와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같은 모국어를 쓰는 한국인끼리 이렇게까지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것도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두고 전 국민 듣기평가 논쟁이 벌어지더니 이번엔 “혀 깨물고 죽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게 “정의당에 있다가 민주당 정부에 있다가 또 윤석열 정부 밑에서 일을 하고, 무슨 뻐꾸기냐?”며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냐?”고 호통쳤다. 후폭풍이 일자,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에 대한 해명을 실었다.

“저는 김 이사장한테 혀 깨물고 죽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김 이사장처럼 정치인이 신념을 버리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연명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 나였으면 ‘혀 깨물고 죽었다’는 취지입니다.”(권성동 페이스북, 10월7일)

영어식으로 ‘내가 너라면’이 행간에 포함된 ‘가정법 과거’형을 썼다는 말인가 보다. 영어식 문형이 몸에 밴 분이라면 그 문장이 “너는 왜 혀 깨물고 죽지 않니?”의 의미를 담고 있단 것도 모르지 않을 텐데, 이런 고급한 ‘자살 청유형’ 문장을 쓰시는 분의 언어세계가 오묘할 뿐이다.

그렇게 영어식 용례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요즘 ‘민영화’란 용어를 어떤 맥락에서 쓰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좀 더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주시기 바란다. 지난달 28일 권성동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과 <문화방송>(MBC) 본사를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보도가 ‘엠비시 자막조작 사건’이며 ‘대통령 발언을 왜곡하여 국민을 속인 대국민 보이스피싱’이라고 성토했다. 덧붙여 “엠비시는 공영방송 자격이 없으니 민영화를 통해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영화를 통해 엠비시를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하니 엠비시를 국민주 방송으로 전환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민영화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사유화(privatization)이다. 공영방송을 사유화해서 사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게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된다는 말인가? 대규모 건설자본에 매각된 언론이 소유 기업의 초법적인 영리를 비호하는 로비 수단으로 전락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사유화가 ‘국민에게 언론을 돌려주는 것’이란 주장이야말로 대국민 보이스피싱과 다름없다. 사유화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쓰는 민영화란 용어는 그 자체로 기만적 레토릭이다.

공영방송의 가장 큰 차별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점이다. 돈 안 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값진 것이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역 없는 비판으로 힘센 자들을 감시·견제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호소에 귀 기울이고, 시청률이 낮고 제작비가 많이 드는 방송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인데 영리기업은 하기 힘든 일, 그래서 공영방송이 필요하다.

채널이 공중파 몇개뿐일 때는 공영방송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원하는 방송을 골라 볼 수 있으니 공영방송이 있거나 말거나 그게 뭐 대수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다매체 다채널 환경이어서 공영방송의 자리가 더욱 귀하다. 다매체 환경에서는 각자 자기 취향에 맞는 뉴스만 골라 보기 때문에 비슷한 무리끼리 각자의 좁고 깊은 우물에 빠져서 그 안에서만 소통하는 필터버블 현상이 심해진다. 자신들의 메아리가 증폭된 우물 안에서 그걸 압도적 여론으로 착각하는 확증편향도 심각하다. 이런 때일수록 모두가 공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마당이 필요하다. 그게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다.

공영방송이 그 역할을 잘해내지 못했다면 더 잘하도록 해야 한다. ‘사유화’가 거기서 왜 나오나? ‘땡전뉴스’로 악명 높았던 5공화국 시절에도 공영방송을 사유화하자는 주장은 없었다.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원한다면 해법은 명확하다. 여야 정치권은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서 손 떼라. 공영방송 사장은 특정 정파에 휘둘리지 않도록 시민추천단을 구성해서 심사하고 선출하게 하라. 정치색과 무관하게 성별, 지역별, 연령별로 구성된 시민추천단에 의해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임된 사장이라면 특정 권력 눈치 보기도 훨씬 덜해질 것이다.

정당 개입 금지나 시민추천제에는 질색하면서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를 하자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티비에스>(TBS)는 없애버리고 <와이티엔>(YTN)은 사기업에 매각하고 엠비시는 민영화하자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솔직한 의중은 결국 “너 내 거 할래, 죽을래?”가 아닌지. 이것이야말로 혀 깨물고 참회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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