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20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사임을 발표한 뒤 돌아서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는 과감한 경제 프로그램으로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이겼다. 대규모 감세로 시장을 진작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에 따라 줄어드는 정부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지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트러스노믹스는 다양한 신념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물론, 자신이 속한 보수당의 많은 사람조차 놀라게 했다. 영국의 한 전직 고위 각료는 트러스가 “현실에서 벗어나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트러스 자신은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총리에 취임한 트러스는 그의 정치적 솔메이트인 쿼지 콰텡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콰텡은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트러스의 개혁 프로그램을 펼쳤다. 영국인 상당수가 곤경에 빠질 수도 있는 엄청난 생활비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재분배는 성장의 적으로 공표됐다.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지만, 재분배가 경제성장과 번영의 뒷다리를 잡는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반성장론자”라는 조롱을 받았다. 트러스와 콰텡은 법인세를 대폭 낮추고, 최고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줄이면,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낙수 효과’로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콰텡 표현대로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겹치는 현상) 악순환을 성장의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는” 정부 감세안을 담은 이른바 ‘미니 예산’은 시장이 트러스 정부를 믿지 못하도록 했다. 오히려 트러스 총리하의 영국의 전망에 대한 우려를 일으키며 금융혼란을 빚었다. 파운드화가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치고, 국채 금리가 치솟으며 정부의 차입 비용도 크게 늘었다. 결국 영국 중앙은행(BOE)이 긴급 국채 매입에 나서며 경제 붕괴를 막았다.
트러스는 그의 우상인 마거릿 대처의 말을 따 오랫동안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결국은 돌아섰다. 놀란 시장을 진정시키고 보수당 의원들에게 자신이 다음번 총선에서 보수당을 이끌 적임자라고 확신시키기 위해 콰텡을 경질했다. 그의 개혁 정책이 실행 전에 송두리째 사장된 것이다. 그러나 재무장관의 희생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최근 여론조사들은 성난 민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수당 지지율은 노동당에 크게 뒤진 20% 아래로 추락했고, 형편없는 위기관리로 보수당 의원들은 총리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결국 취임 45일 만에 트러스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 역사상 최단기 총리로 남게 되었다.
추가적 재원 마련 없이도 기업과 부유층 세금을 낮추면 낙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트러스노믹스 실험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급진 우파의 경제적 환상은 시장에서나 정치에서나 실현될 수 없다. 그리고 영국에서 이런 주장은 앞으로도 매우 오랜 기간 더는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노동당은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보수당이 앞으로 주요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하기 어렵게 됐으니 말이다. 전통적으로 어느 나라든 유권자들은 경제에 대한 좌파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파가 이번에 자신들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좌파의 이런 취약점을 해결해주고 있다. 하지만 좌파는 여전히 트러스노믹스의 실패를 신중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 사례는 또 금융시장의 힘도 보여준다. 무모한 세금 삭감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를 통해 더 나은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 증가 역시 지속가능한 재정정책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분명히 ‘저렴한 돈’(cheap money)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조만간 다시 돌아온다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정부 부채를 줄일 좌파의 중장기적 전략은 뭔가? 불평등이 심화하는 국면에서 재분배를 피하지 말고 좀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세금 인상도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진보세력은 더 평등한 사회가 정치적으로도, 또한 경제적으로도 왜 필요한지를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