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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겉도는 한-일 관계와 전략대화

등록 2006-03-05 18:53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세상읽기
한-일 간의 ‘각박한 외교전’이 시작된 이래 만 1년이 지났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 독도 문제라는 세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악화된 외교관계는 좀처럼 개선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서 일본 정계와 언론은 ‘내정간섭’이라 반발하며 “미래지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몰아붙였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려 한다면 “법을 바꾸고 군비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구절을 문제삼은 것이다.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일본의 개헌 움직임을 견제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불쾌감’을 표시하고,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헌법 개정은 내정문제”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니혼게이자이신문>만이 기념사에서 지난해와 같은 과격한 표현이 줄고 군대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남은 임기 중에 대일관계 개선방안을 찾으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분석했다. 기념사 전문을 읽으면 이런 해석이 더 타당하다.

지난해 3·1절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강제징용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이 받은 고통은 (납치 문제로 인해 일본 국민이 받은 고통의) 수천 수만배”라고 지적하면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 반성, 배상을 한 이후에 화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일본은 이미 사과를 했기 때문에 거듭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과에 합당한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며, 사과를 뒤집는 행동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에 비하면 극적인 전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구절이 올해 연설의 핵심 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초점을 ‘과거사’에서 일본의 ‘현재와 미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법을 바꾸고 군비를 강화하는 것을 문제삼은 구절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나아가 우경화의 표상처럼 여겨지고 있는 보통국가라는 표현을 원리적으로 배제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신뢰’라는 조건을 제시한 것도 주목된다. 그 속에는 물론 한국과의 신뢰관계도 포함될 것이다.

‘사과에 합당한 실천’ ‘사과를 뒤집는 행동’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사실상 집약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각박한 외교전을 촉발한 세 쟁점 중에서 역사교과서 문제는 채택률의 저조, 교과서 문제를 대상으로 넣은 한-일 역사공동연구의 계속 등 최소한의 성과가 있었으며, 독도문제에서도 한국은 실효지배를 강화했고, 일본 정부도 시마네현의 움직임과는 거리를 두는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법을 바꾸고 군비를 강화한다는 부분이 일본의 개헌 움직임을 특정한 것인지, 아니면 좀더 일반적으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모색하는 움직임’의 문제성을 지적한 표현인지는 불분명하다. 개헌 논의를 견제하기 위한 언급이라면 그 표현이나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며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 아직 개헌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형식적으로는 일본 국민의 주권적 행위이므로 대통령의 직접적 언급보다는 좀더 포괄적인 외교적 대응이 바람직하다.

개헌을 견제하려는 내정간섭이라 몰아붙인 일본 정계와 언론의 반응이 의도적인 것인지, 몇몇 단어에 대한 피상적 반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깊어만 가는 한-일 간의 불신과 단절이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 6일 도쿄에서 한-일 외무차관의 ‘전략대화’가 열린다. ‘고이즈미 이후의 일본’을 내다보는 한국의 전략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종원/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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