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그는 술이 잔뜩 취했다. 새벽 2시 일본 도쿄의 번화가인 롯폰기 거리를 비틀거리던 그는 길 가던 한 여성(22)에게 다가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 강제 외설죄의 현행범으로 붙잡힌 사람은 놀랍게도 현역 중의원 의원이었다. 1년 전쯤인 지난해 3월10일 새벽의 일이다.
자민당의 나카니시 가즈요시(41) 의원은 이튿날 술이 깨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술에 취해서…’라고 변명하지 않았다. ‘한번 실수이니 너그럽게 용서해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으로서 용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탈행동을 한 것을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스스로 단죄했다.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는 “부끄럽다”는 말을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평생 술을 마시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의원 사직서와 탈당계는 이미 사건 당일에 각각 중의원 사무국과 자민당 본부에 제출됐다.
반성과 사과에도 차원이 있다면 최상급인 셈이다. 있을 수 없는 잘못을 하긴 했지만, 뉘우치는 태도가 하도 진실해 그런 권한만 있다면 용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최연희 의원도 여기자 성추행 당시 나카니시 의원처럼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동아일보〉 ‘대표’들과 ‘상견례’하는 자리에서 초대손님 중 한사람인 여기자를 의원이 추행하는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 의원의 대응은 나카니시 의원과 180도 달랐다. 그는 “취해서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현장에서 ‘적당하게’ 수습하려고 무진 애썼다. “당시 우리는 동아일보 기자들에게 싹싹 빌었는데, 최고위원들의 입장에서 상당한 수위의 사과를 했다”는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의 말은 이런 노력을 잘 보여준다.
피해자의 굴하지 않는 용기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이후에도 그는 시간끌기와 얼굴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6일 오후 사무총장직 등 당직 사퇴서만 내고는 잠적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다음날 이번에는 마지못해 탈당계를 냈다. 얼굴은 비치지 않은 채 “당원과 당에 대해 절대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여성을 노리개 대상으로 삼은 행동과 발언에 대한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라기보다는 당에 대한 충성심이 앞섰다.
잘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진실성이 부족하기는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27일 열린 당 윤리위원회는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시간을 끌다가 최 의원이 탈당계를 내자 “징계 대상이 없어졌다”며 흐지부지 끝났다. 국민여론을 의식해 최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는 했지만, 이나마 징계를 논의하는 징계 심사가 아니라 본인에게 통보만 가능한 윤리 심사안이다. 국회 윤리위 규정이 그렇다는 말만 늘어놨다.
시간이 흘러도 파문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커지자 뒤늦게 이재오 원내대표가 나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인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은 “탈당했으면 된 게 아니냐” “그 정도 일로 뭘…”이라며 최 의원을 싸고 돌았다. 심지어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당내 여성의원들에게 “너무 심하게 하지 마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팔은 안으로만 굽었다.
나카니시 의원의 성추행 사건이 터진 직후 일본 자민당은 긴급 당기위원회를 소집했다. 한나라당과 비슷한 보수정당인 자민당은 나카니시 의원의 탈당계를 수리하지 않고 단호하게 제명했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나카니시 의원의 성추행 사건이 터진 직후 일본 자민당은 긴급 당기위원회를 소집했다. 한나라당과 비슷한 보수정당인 자민당은 나카니시 의원의 탈당계를 수리하지 않고 단호하게 제명했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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