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록밴드로서 공연 때 관객들을 열광시키려면 우리가 먼저 흥분 상태로 텐션을 유지해야 한다. 공연장의 굉음과 환희의 아우라를 느낄 땐 정말 짜릿하고 행복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 정적과 허전함은 점점 진해진다. 공허함을 달래려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마셔봐도 해소되지 않는 어떤 쓸쓸함이 있다. 이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결국 혼자서 이 밤을 견뎌내고 담담하게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아침, 눈부신 햇빛이 피부를 툭툭 치며 나를 깨운다. 그러면 창문을 활짝 열고 어제 입었던 땀에 전 공연 의상들을 세탁기에 넣고, 이불을 햇볕에 말리며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린다. 간단한 청소가 끝난 후, 커피를 내려 마시며 바흐의 음악을 틀어놓고 공중에 부유하는 먼지를 태우기 위해 명상하듯 향초를 켠다. 음악과 커피는 지친 몸과 영혼을 달래주며, 내게는 감사의 마음이 차오른다.
꼭 거창한 일에만 감사할 게 아니다. 삶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로 감사할 일이다. 시끌벅적한 술자리도 좋고 여행, 공연, 오토바이 다 신나고 즐겁다. 하지만 소박한 반찬과 밥이더라도 꼭꼭 씹어가며 단물을 느끼고, 지친 빨랫감들을 들어 씩씩하게 빨래를 하고 탈탈 털어 새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상이 좋다. 찬란한 일상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며, 행복이다.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이 많다. 내 노력에 대한 대가라고 하더라도 감사의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나비효과’라는 말처럼 이 우주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나! 세상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클래식이나 밴드 음악도 구성원들이 서로 교감하고 음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독창을 하더라도 관객이 없다면 그 음의 진동과 파장은 의미가 없다. 그저 단순히 시간 위에 음을 나열한 것밖에 안 된다.
한 끼 식사를 할 때, 내가 열심히 음악을 해서 번 돈으로 당당히 먹는다고 쳐도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 관객들에게 먼저 감사해야 하고, 스태프들께 감사해야 하고, 음식점 주인, 농어민분들, 그리고 미각과 후각, 간, 위 등 모든 나의 내장 기관들, 결국에는 나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죽음에도, 웃음과 행복을 값지게 하는 고난과 역경에도 감사해야 한다.
얼마 전 친구가 삶은 테트리스 게임 같다고 했다. 내가 지금 필요한 것은 긴 막대기인데, 전혀 쓸모없는 방향으로 구부러진 모양의 막대기만 떨어진다고. 하지만 우린 주어진 막대기에 감사하며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들다. 우리는 삶을 원망할 수도 있고 감사할 수도 있다. 이미 여백이 뚫린 채 쌓여가는 테트리스의 줄에 아쉬워하고 후회해 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 시간은 더 빨리만 흘러가고 우리는 그때그때 최선의 방법을 찾아 테트리스 줄들을 깨나가야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씨름을 좋아했다. 타격하지 않아도 되고, 서로의 의도를 몸으로 재빨리 간파할 수 있으며, 지구력과 근성이 있어야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뒤집기’라는 기술이다. 몸집이 왜소한 내가 덩치가 큰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해 방향을 비틀어 중심을 무너트리고 역전을 할 때 주위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최악의 상황이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라는 긍정과 감사의 마음이 끝까지 남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위기를 기회로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시간은 나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착한 척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빅데이터에 의하면 겸손하고 감사한 것이 합리적이다. 내 생각에 감사는 최고의 생존 비법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래도 이만하면 ‘감사’하다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해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뒤집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즉, 위기와 기회 사이에는 ‘감사’가 존재한다.
불안은 활시위 같다. 불안이 커질수록 활시위는 팽팽해진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에 긴장하지 말고, 방향을 잘 잡는다면 우리는 불안해진 만큼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불안과 행복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불안은 살아가는 동력이 되고, 행복은 능동적으로 찾을 수 있게 된다.
시간은 한정적이다. 에너지도, 이 짧은 가을날도… 밝은 쪽을 향할지, 어두운 쪽을 향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라고 천천히 말해 보면 입 모양이 옆으로 길게 벌어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가 지어진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는 드물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중력에 의하여 입꼬리는 처진다. 어쩌면 중력과 시간에 저항하고 죽음에 저항하는 일. 그것은 감사하며 미소 짓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