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 이태원 참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편집국에서] 전정윤 | 사회정책부장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큰소리칠 때까지만 해도 감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재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몹시 부적절한 발언이라 여겼을 뿐이다. 한국 정부의 디엔에이(DNA)에 적어도 세월호 참사의 교훈만큼은 각인돼 있어, 설마 이태원의 그날이 맹골수도의 그날과 포개질 리는 없으리라 믿었다.
불법 증개축과 행정 태만, 안전사고 예방 미비, 신고전화 무시, 컨트롤타워 실종, 경찰과 소방의 초기 대응 실패, 재난안전통신망 부재와 사상자 수습 혼란…. 결과적으로 예고된 참사. 세월호 참사 때 온 국민의 ‘국가는 없었다’던 탄식이 이태원 참사로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면서 정부에 대한 믿음은 회의로 변해갔다. 급기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1시간21분 미스터리’를 접하곤 디테일까지 소름 끼치는 기시감에 할 말을 잃었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발생 이후 50분이나 늦게 현장에 도착했고, 참사 발생 1시간21분 뒤에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골든타임에 어떠한 조처를 했는지 확인되지 않은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의 ‘1시간 미스터리’ 역시 8년이 흐른 지난 9월 발간된 ‘4·16 세월호참사 종합보고서’에서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모든 참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참사 뒤에는 누구 하나라도 참사 발생 전 ‘전조’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뒤늦은 후회가 수반된다. 2014년 4월16일 맹골수도의 세월호 침몰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었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증개축과 과적, 그 위험한 배를 바다로 내보낸 해양수산부·한국선급·해운조합, 절박한 신고에 다급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해경·안전행정부·청와대의 조직적 무능과 방조 결과였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용산구청은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길 보행을 방해하는 불법 증개축 건물을 10년 가까이 방치했다. 인파가 운집하면 위험한 이 일대에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릴 거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지역축제가 아니라며 관리 의무에 손을 놨다. 경찰은 반정부 집회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현장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경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더욱이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112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은 조처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뒤 1조5천억원을 들여 만든 경찰·소방·의료 재난안전통신망도 무용지물이었다. 참사 수습 과정에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실인지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인지조차 여전히 혼선이다.
한국 정부는 8년 전 304명의 목숨을 잃고 한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다시 158명을 잃었지만, 그 결말은 세월호 참사와 달라질 여지가 남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 했다’는 여론의 추궁이 시작되자, 검찰 수사의 초점을 선원과 선장, 해운회사, 운항관리자로 집중시켰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은 물론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과 진상규명도 방해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을 ‘순수 유가족’과 ‘강성 유가족’으로 분리하고 고립시켰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세월호의 진상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분열되고, 유족이 고통받는 건 박근혜 정부의 이런 대응 탓이 크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 국면 전환과 정국 안정을 노리는 것은 정부의 본능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역설적으로 신속하고 투명한 진상규명과 완전한 국가책임, 피해자에 대한 전 사회적 추모, 유족에 대한 위로와 합당한 보상이 국면 전환과 정국 안정의 지름길이라는 점이다. 국정조사도 특검도 아닌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셀프 수사’를 고집하며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정부·여당, 야당 의원이 대통령실의 참사 대응을 따져 물을 때 “웃기고 있네”라고 쓴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재난 주무부처 행안부 이상민 장관 문책과 정치적 책임을 묻는 여론에 침묵한 채 경찰만 질타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부디 세월호 참사를 되돌아보길 바란다.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