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이나 사이판, 다낭 같은 근거리 인기휴양지 관광상품은 두어달은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여행시장에 다시 활기가 돌고 내년엔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분위기와 전망은 대형 여행사들에나 해당하는 얘기일 뿐, 나처럼 소규모 여행사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임경재 | 미코트래블 대표
일이 없다는 건 그 무엇보다도 막막했다. 망망대해나 사막에 혼자 남겨진 듯 사방팔방으로 소리쳐 보아도 메아리조차 없었다. 더 버티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 끝은 비참하게도 삶을 포기하거나 그렇지 않는다면 결국 굶어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는 국외여행업자들에게는 완벽한 직격탄이었다. 그 어떤 업종보다도 피해가 컸고, 거의 모든 업자가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규모 국외여행업자들은 코로나로 호황을 누린 다른 업계로 들어가 품을 팔았다. 택시운전, 택배, 음식배달….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다른 업종으로 하나둘씩 사라졌다.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여행업자들에게 여행업은 쉽게 포기하거나 그만둘 수 없는 일종의 정체성이며 삶의 길이다. 계단을 오르며 택배를 하고, 배달음식을 포장하는 순간에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여행업으로 다시 돌아가 손님들과 관광지를 누비는 상상을 했다. 그런 상상으로 손발에 익지 않는 고된 노동을 버틸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무슨 여행이냐!”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지난해만 해도 국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마치 바이러스 전도사처럼 여겨졌다. 국외여행업에 대한 인식도 다를 바 없었다. 사양산업을 넘어서 사망진단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너무 답답해서 이름 있는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그냥 다른 일을 하라’는 얘기를 듣고 오기도 했다.
당시 국외여행업에 대한 정부의 대출이나 보상정책 역시 이런 분위기와 맥을 같이 했다. 피해가 가장 큰 업종이었지만 거리두기 규제 때문이 아니라 팬데믹이라는 재난 속에서 불가피한 피해를 본 것으로 여겼다. 손실보상이 아니라 전체 중소사업자 테두리 내에서 구제 차원으로 몇차례 지원금을 지급한 게 전부였다.
기실 국외여행업은 필수 국가산업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축적된 분야도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여행수지 적자 폭을 키우기만 하는 마이너스 요인이었기에 굳이 돌볼 이유도 없었다.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는 야생화 같은 업종이었다. “그래, 우리가 업종을 잘못 선택했지.” 업계 지인들과 전화통화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런 자조로 끝을 맺었다.
2022년 가을 코로나는 진정됐고, 사람들의 공포도 가라앉았다. 국외선 비행기 취항횟수가 늘고, 출입국 검역절차도 간소화됐다. 이에 맞춰 대형 여행사들은 저렴한 해외여행 상품을 쏟아내고, 그 판매도 코로나 이전 수준에 육박한다고 한다. 텔레비전(TV) 홈쇼핑의 저가형 패키지 여행상품이 20여분 만에 완판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고, 괌이나 사이판, 다낭 같은 근거리 인기휴양지 관광상품은 두어달은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여행시장에 다시 활기가 돌고 내년엔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분위기와 전망은 대형 여행사들에나 해당하는 얘기일 뿐, 나처럼 소규모 여행사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시장 분위기는 차치하고 함께 일할 인력을 구하는 일도 어렵다.
“사장님, 제 월급 감당되시나요?” 몇달 전 함께 일했던 직원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제안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자신의 임금이 전보다 많이 올랐다는 뜻도 있겠지만, ‘소규모 여행사의 전망이 얼마나 밝겠냐, 다시 돌아간들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겠냐’는 비관적인 전망이 담긴 말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눈에는 그게 명확한 현실로 보였을 테고,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여행업계 종사자들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국외여행업이 무익하기만 한 업종은 아니다. 국외여행과 출장, 유학을 통한 경험과 지식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데 한몫했고, 한국인의 국외여행은 우리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여행의 발전도 국외여행업 발전과 함께 나아간다. 이것이 국외여행업자로서 내가 갖는 자부심이다.
정부가 나 같은 중소 국외여행사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자들이 아님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주길 절실하게 요청한다. 먼저 코로나로 가장 타격이 큰 업종이기에 손실보상법 대상 업종에 지금이라도 편입시켜 그간의 손실보상을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온라인마케팅이나 거래기반 구축이 어려운 중소 여행업자들이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이미 폐업한 업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이들에게도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