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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쇼’ 없는 예약문화 큰 욕심일까요? [6411의 목소리]

등록 2022-11-23 18:32수정 2022-11-23 23:26

헤어디자이너로서 보람있고 웃을 일들도 많다. “머리 멋있게 해주셔서 면접 잘 봐서 취직했어요!”, “머리가 깔끔해서 대학 면접에서 합격했어요!”, “머리가 멋있고 예쁘게 돼서 결혼식을 너무 잘했어요”…. 그럴 때면 대학 입학에서 결혼까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를 함께하는 행복도우미로 사는 것만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강현구 | 헤어디자이너

서울지하철 합정역 2번 출구 앞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21년차 헤어디자이너다. 미용사로서 20여년 동안 고객을 상대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헤어디자이너는 나에게 천직과 같았다. 넉넉지 않은 농부의 4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나 학창시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말은 “열심히 공부해서 아빠, 엄마처럼 농사짓지 말고 좋은 대학 가서 큰 회사 들어가야지!”였다. 부모님 바람대로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99학번 대학생이 됐다.

외환위기 맞은 직후였던 당시는 모두 허덕이던 때였다. 1학년 재학 중 진로를 고민하던 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를 마칠 때쯤 군에서 미용 공부하는 동기를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대하자마자 복학하는 대신 상경해 짧은 시간에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시 아버지의 반대가 꽤 심했다.

23살 나이에 당시 패션의 메카인 서울 청담동 한 대형 미용실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다. 2000년 초 내가 받은 첫 월급은… 놀라지 마시라! 정확히 38만원이었다. 미용실에 취업하면 ‘교육받으며 일한다’고 생각해 급여가 박했다.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가 기본이었다. 직장에서는 식사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고, 식사시간 또한 길어야 15분 내외였다.

미용업을 꾸준히 하는 것은 힘들다. 10명이 시작하면 힘든 스태프 생활 3~4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5명가량은 그만둔다. 디자이너 중에서도 3명 정도는 포기한다. 고객들 시술 과정이 오픈돼 있기에 결과에 대한 압박감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고객이 만족해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배가된다. 여자 고객 시술의 경우 보통 3~4시간씩 걸리기에, 지금도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자연스레 위장병을 얻어 병원도 자주 찾는다.

이 업계에서는 20살 즈음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20대 초반 디자이너도 많다. 요즘은 젊은 디자이너가 감각이 좋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헤어디자이너 자질 중 제일 중요한 건 커트(cut) 능력이다. 남자, 여자 커트가 가능해지면 디자이너로 승급한다. 고객들은 ‘커트는 간소한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디자이너가 시간과 비용을 가장 많이 투자하는 분야가 바로 커트 기술이다. 수많은 가위질 기술 중 하나만 제대로 익히려 해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수백만원 학원비를 부담해야 하고, 한개에 수십만~수백만원씩하는 가위도 5~6자루씩 갖춰야 한다.

헤어디자이너로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면 보람있고 웃을 일들도 많다. “머리 멋있게 해주셔서 면접 잘 봐서 취직했어요!”, “머리가 깔끔해서 대학 면접에서 합격했어요!”, “머리 예쁘게 해주셔서 소개팅에서 애인 생겼어요”, “머리가 멋있고 예쁘게 돼서 결혼식을 너무 잘했어요”…. 그럴 때면 대학 입학에서 결혼까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를 함께하는 행복도우미로 사는 것만 같다.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두 아이가 커서 ‘아빠처럼 멋진 헤어디자이너가 될 거야!’라고 하면 “아주 멋진 직업을 선택했구나!”라고 지지하겠다.

인상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적지 않다. 한번은 회색 머리칼을 주문하는 30대 여성의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탈색기를 5~6시간 동안 반복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오랜 시간 실내에 있어 답답한지 ‘잠깐 바람 좀 쐬겠다’며 나선 손님은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십년 넘은 단골이 예약시간보다 30분 일찍 오더니 ‘빨리 좀 해달라’며 계속 재촉했다. 하지만 먼저 온 고객을 시술하느라 요구를 들어드릴 수 없었다. 예약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한 고객은 다짜고짜 “내가 우습냐? 십년 넘는 단골이 부탁하면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버럭 화를 내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다. 3주에 한번씩 10년 이상 거르지 않고 찾아오던 친형 같은 분이었는데, 여러번 사과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했지만 응답하지 않았고 그 뒤로 발길을 끊었다. 이렇듯 손님이 일찍 오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늦게 오는 경우는 아무 일 없이 넘어가곤 했다.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서비스업 근무여건이야 법과 제도가 정비되기도 했고,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예약문화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연락 없이 10~20분 정도 늦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약속을 어기고 펑크를 내도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이에 따른 희생은 오롯이 우리 몫이다. 약속을 어기면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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