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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

등록 2022-11-24 18:39수정 2023-09-21 18:11

열린편집위원의 눈

<한겨레>는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국내 언론사 중 가장 먼저 ‘기후변화팀’을 만들며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한겨레>는 그간의 성과만큼 한계점도 노정하고 있다. 기후변화·에너지 이슈가 전 부서에 걸쳐 있는 이슈임에도 기후변화팀 외 다른 부서에서 이와 관련해 고민한 기사는 찾기 힘들다.
&lt;한겨레&gt; 기후변화 뉴스를 모아 볼 수 있는 ‘기후변화&amp;’ 누리집 갈무리.
<한겨레> 기후변화 뉴스를 모아 볼 수 있는 ‘기후변화&’ 누리집 갈무리.

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올해 4월 시작된 <한겨레> 10기 열린편집위원회가 반환점을 지났다. 열린편집위 회의는 매달 한겨레의 현안 보도에 대한 위원들의 평가와 제언이 주를 이룬다. 주제는 매달 다르지만 우리의 토론은 결국 진보란 무엇이냐, 진보언론의 역할이란 어때야 하냐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여러 토론 가운데 20대 대부분을 기후변화 문제에 천착했던 내가 가장 공감했던 것은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야만 하기에 걷기 시작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계속 걸어나가는 의지’가 갖는 가치였다.

기후위기 문제는 우리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이미 우리를 거대한 불확실성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200년 넘도록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성장했던, 최근 20년간 더 가파른 속도로 성장 중인 탄소문명에 우린 3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작별을 고해야 한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제안했고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정치인들이 합의한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 갖는 확정적이고 비가역적인 의미다. 그에 따라 석탄과 가스 발전, 정유와 석유화학, 심지어 조선업까지 우리의 발전과 제조 산업은, 노동자들은, 이 산업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은 닥쳐오고 있는 거대한 폭풍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뿐일까. 과학자들은 예측 불가능한 극한 기후현상들의 빈도와 강도가 늘어났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마주하는 매해 여름 폭염과 폭우, 대륙을 가리지 않고 여러 나라들이 겪는 다양한 피해들이 과학자들의 예측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위와 같은 불확실성들이 초래할 정치적인 불안정성과 시민들의 불안감이다. 가뭄으로 인해 식량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중동지역의 분쟁과 사상자 수가 늘어나는 경향성이 이를 방증한다.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을 야기한 시리아 난민 사태의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가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가격 폭등이었다는 분석은 꽤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세계 식량·제조업 가치사슬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한국 또한 그 불안정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위처럼 기후위기가 인도하는 거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한국의 독자들은 언론에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올해 진행한 ‘일반뉴스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수용자 77%가 기후위기 관련 보도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다른 시사 이슈에 대한 관심도보다 높은 수치다. 정치와 국회발 뉴스가 지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언론의 현실을 고려하면 다소 놀라운 결과다.

이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보도를 잘 보지 않는 이유가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18% 정도에 불과했다. 50% 넘는 수용자는 기후위기 보도 자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시민들은 더 많은 기후위기 콘텐츠가 자신들의 눈앞에 보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문제의 심각성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택할 수 있는 해결책들에 집중한 보도를 접하고 싶어 한다.

국내 언론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후위기 이슈에 대응해오고 있다. <한겨레>가 그랬듯 기후변화팀을 신설하기도 하고, 기존 환경·과학분야 담당 부서나 기자를 늘리기도 하고, 그마저도 아니라면 데스크 간의 원활한 소통을 장려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가지 모델 모두 취재 일선에 있는 기자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편집국 차원의 의지가 없다면, 취재기자의 노력은 인터넷의 홍수 속 어딘가에 쌓이는 사료 (史料)로만 남게 된다.

<한겨레>는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국내 언론사 중 가장 먼저 ‘기후변화팀’을 만들며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한겨레>는 그간의 성과만큼 한계점도 노정하고 있다. 기후변화·에너지 이슈가 전 부서에 걸쳐 있는 이슈임에도 기후변화팀 외 다른 부서에서 이와 관련해 고민한 기사는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부서 간 긴밀하게 협업이 이뤄진 흔적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되레 공동화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한국의 진보언론으로서 <한겨레>가 앞으로 걸어나갈 길은 어떤 길이어야 할까. 우릴 덮쳐오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길을 <한겨레>는 시민들과 함께 걸어나갈 준비가 돼 있을까.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8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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