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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국 대신 사랑을 선택하고 비밀결혼한 소련 체스 선수

등록 2022-11-24 18:40수정 2022-11-24 19:55

[나는 역사다] 옐레나 아흐밀롭스카야(1957~2012)

옐레나 아흐밀롭스카야는 소련 체스 국가대표였다. 1957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에게 체스를 배웠고 1978년 체스올림피아드에서 10승을 거뒀다. 1985년엔 쿠바에서 열린 국제 체스대회에 나갔다가 존 도널드슨이라는 미국 체스 선수를 만났다. 아흐밀롭스카야와 도널드슨은 서로 좋아했지만 국적이 문제였다. 원수 가문의 연인을 사랑한 ‘로미오와 줄리엣’ 같았다.

3년 뒤 옐레나 아흐밀롭스카야는 소련 체스 여성대표팀 주장이 돼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체스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갔다. 이때 도널드슨은 미국 대표팀 주장이었다. 두 사람은 결단을 내렸다. 그리스 땅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88년 11월25일의 일이다.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치려고 했는데 그리스 언론에 기사가 났다. 아흐밀롭스카야는 대회가 끝나기 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이 사건은 망명이 아니다, 결혼이다.” 당시 미국 대표팀 선수의 말.

뒤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에 남겨진 소련 대표팀 가운데 남성팀은 그래도 우승했다. 아슬아슬하게 헝가리팀에 밀리던 여성팀은 주장 아흐밀롭스카야가 떠난 뒤 결국 우승을 놓쳤다. 아흐밀롭스카야 가족도 소련에 남아 있었다. 이혼한 전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 다나는 일곱살이었다. “(소련 정부가) 딸을 보내주기를 기대한다”고 부부는 밝혔다. 아흐밀롭스카야는 1년 뒤 위험을 무릅쓰고 딸을 데려오기 위해 고국을 방문해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몇해 뒤 소련과 미국의 냉전이 끝났다. 소련이란 나라가 무너지면서였다. 미국에 온 뒤 영어를 독학하고 회계사로 일하면서도 계속 체스를 뒀던 아흐밀롭스카야는 소련이 무너지기 한해 전 도널드슨과 이혼했다. 1990년, 1993년(공동우승), 1994년 세차례 미국 체스대회에서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아흐밀롭스카야는 소련에 살던 시절 자신에게 체스를 가르쳐주던 게오르기 오를로프를 만나 1995년 새로 결혼했다. 새 남편과 시애틀에서 체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현지 언론에 체스 칼럼을 연재하던 아흐밀롭스카야는 2012년 11월18일 55살에 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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