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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FIFA 카타르월드컵: 축구, 정치, 그리고 자본주의

등록 2022-11-27 19:07수정 2022-11-27 19:34

독일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해 3월25일 월드컵 유럽예선 아이슬란드와 경기 전 인권 메시지를 알리고 있다. 뒤스부르크/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해 3월25일 월드컵 유럽예선 아이슬란드와 경기 전 인권 메시지를 알리고 있다. 뒤스부르크/로이터 연합뉴스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나의 첫 월드컵이 열렸던 1986년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린 시절 내가 겪은 놀라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렸던 나는 일찍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한 경기 전체를 다 볼 수는 없었다. 독일인들은 아이들의 취침 시간에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동네 맥줏집으로 데려가 그날 첫 경기의 전반전을 보게 해줬다. 중년의 축구팬들은 내게 참 잘해줬다. 탄산음료와 감자칩을 곁들인 커리소시지, 아이스크림. 그리고 당시 독일팀은 정말 축구를 잘했다. 물론 우승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키 작은 미드필더인 디에고 마라도나는 어느 팀에나 벅찬 상대였다(독일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역자). 하지만 여전히 아주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 툭 터놓고 말해 나는 축구라면 환장을 하는 나라에서 자랐다. 피파 월드컵은 4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경기에 몰입했다.

시간을 현재로 돌려보자. 지금은 2022년이고, 카타르월드컵이 시작됐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독일의 열기는 다소 수그러든 것처럼 보인다. 확실히 내 어린 시절처럼 열광하지는 않는 것 같다. 2006년 독일월드컵, 2014년 브라질월드컵도 아주 오래된 듯 느껴진다. 한 여론조사 결과, 독일인 10명 가운데 7명은 월드컵 경기를 볼 생각이 없고, 77%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이후 월드컵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고 말한다. 이 중 51%는 원래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그럴 수 있다.

월드컵 경기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응답자 57%는 카타르의 인권 상황을 언급했다. 특히 이주민에 대한 처우를 크게 비판하고 있다. 이주민 노동자들은 카타르의 아주 잔혹한 환경에서 경기를 위한 기반시설을 건설했는데, 그들의 건강과 삶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또 카타르라는 이 작은 걸프 국가는 성소수자(LGBT) 문제가 있다. 응답자의 52%는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된 스포츠의 상업화를 비판한다. 독일 대표팀에 거의 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전체 응답자의 78%) 중에 무려 72%가 대표팀 상품화를 그 이유로 꼽았다.

물론 푸딩의 맛이 어떤지는 먹어봐야 안다. 독일팀이 선전한다면 월드컵에 대한 관심은 증가할지 모른다. 하지만 독일에서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가 이렇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한 스포츠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독일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아주 감정적인 문제다. 카타르월드컵을 둘러싼 논란이나 과도한 상업화는 스포츠와 대중의 감정적 유대가 어떻게 단절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권이나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돈이 더 깊숙이 침투하는 것과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중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혹은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방식으로 불만과 거부 반응을 표현한다.

이런 현상은 분명 국제축구연맹(FIFA), 각국 축구연맹, 월드컵 후원사 등 축구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큰 도전이다. 이들이 스포츠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나아가 (올림픽 등) 다른 거대 스포츠 이벤트도 이와 같은 도전에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특히 큰 대회 유치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스포츠업계 관계자들의 일반적 주장에 대중이 동의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게 카타르만이 아니다. 예컨대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나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중들은 오히려 (이런 국가들이) 스포츠를 통해 이미지를 세탁한다고 생각하며, 체육계 관계자들이 이런 기회를 준 것을 못마땅하게 본다. 궁극적으로 스포츠 산업의 소비자인 팬들은 더 비판적이고 정말 냉소적이게 됐다. 그렇다. 팬들의 태도는 항상 일관적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윤리적 우려는 변화의 동력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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