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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청년의 귀촌생활이 궁금하시다고요? [6411의 목소리]

등록 2022-12-07 18:54수정 2022-12-07 23:24

주변 어르신들은 근처 대도시 직장에 취직하든지 귀농 청년에게 지원하는 억대 대출을 받으라고 권한다. 대출받아 땅을 사거나 비닐하우스나 스마트팜을 지어 대농으로 발돋움하라는 얘기다.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고생하면 시골에서 잘살 수 있다”고 조언해 준다. 먼저 와서 성공한 사람들 사례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외울 정도다.

밭에서 나온 수확물을 갈무리하는 모습. 조은지 제공
밭에서 나온 수확물을 갈무리하는 모습. 조은지 제공

[6411의 목소리] 조은지 | 귀촌청년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 전북 완주군의 시골로 온 지 9개월 차. 귀농·귀촌청년으로서 도시인들에게 으레 듣는 말은 두가지다. ‘유유자적 여유로울 것 같아 부럽다’와 ‘대체 뭐로 벌어먹고 사느냐’다. 둘 다 맞고도 틀린 말이다. 도시와 달리 한적한 풍광 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바쁘게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직장도, 손님으로 끌어들일 만한 사람도 적지만, 그만큼 인력이 더 필요한 곳이라 이것저것 해서 벌어먹을 데도 많다.

딱히 어떤 직업을 갖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좀더 자급자족하고, 돈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만큼만 버는 삶을 생각했을 뿐이다. 도시인이 농촌에서 뭘하며 살 수 있을지 알기 어려우니, 직접 와서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오게 된 농촌에서, 어쩌다 보니 다양한 일을 하게 됐다. 일단은 일주일에 한번 여섯명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밭에서 일한다. 기계나 비닐, 농약 없이 짓는 농사이기에 품이 많이 든다. 우리가 먹을 걸 기르는 정도지만 수확물이 많을 때는 종종 동네식당에 팔기도 한다. 토종 씨앗으로 약 안치고 지은 농산물임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사주는 정도다. 그렇게 번 돈으로 가끔 밥을 사먹거나 필요한 모종, 종자를 산다.

일주일에 이삼일은 읍내 자전거 가게에서 일한다. 같이 사는 짝꿍이 자전거수리 교육을 받다가 덜컥 직원으로 일하게 된 곳이다. 짝꿍이 귀농·귀촌센터에서 교육받느라 출근하지 못하는 날 가게에 나간다. 가게 영업시간이 아닌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에 손님들 전화를 받고 응대하는 일도 한다. 수입은 한 사람 생활비 정도인데, 그걸 둘이 나눈다. 자전거 특성상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수입이 거의 없다.

얼마 전에는 동네 청년들의 품앗이를 주선하는 사무소를 통해 일거리를 받기도 했다. 컴퓨터 사무에 자신있다고 하니, 발표자료를 만드는 일감이 들어왔다. 또 마을의 혐오시설 유치에 반대하는 전단지 수천장을 접고 붙였다. 시급 1만5천원씩 네번 일하고 지금까지 21만원을 벌었다.

최근에는 쌀을 수확하고 판매하는 일로 바빴다. 동네 ‘벼농사 두레’를 통해 벼농사에 필요한 공동작업을 함께하고 내가 농사지을 땅을 분배받을 수 있었다. 이앙기와 트랙터 섭외, 운반 및 도정까지 모두 두레 도움을 받았다. 우리 몫으로 받은 논 500평에서 쌀 560㎏을 수확했다. 둘이 먹기에는 많은 양이라, 부랴부랴 전단지 만들고 온 인맥을 동원해 홍보에 나섰다. 며칠 동안 쌀을 소분하고 포장해 자전거로 택배영업소에 날라가며 모두 판매할 수 있었다. 목돈깨나 번 기분이었지만, 계산해 보면 사실 몇십만원이 남았을 뿐이다.

여름에는 전라북도 지원을 받아 자연농 농부들을 찾아다니는 활동을 하면서 얼마간 활동비를 받아 썼다. 여기에 원격으로 서울에 있는 어머니 가게 일을 보고 얻는 약간의 용돈, 가끔 생기는 일용직 아르바이트, 먹거리를 만들어 동네장터에서 파는 일, 한달에 한두번씩 쓰는 글의 원고료 정도가 지금까지의 수입이었다. 이렇게 돈벌이한 일을 써놓고 보니, 내가 봐도 대체 어떻게 벌어먹고 산 건지…. 그래도 일단 이 생활이 가능한 까닭은 밭에서 나오는 작물들로 식재료비를 아낄 수 있고, 서울보다 월세가 아주 싸기 때문이다.

주변 어르신들은 근처 대도시 직장에 취직하든지 귀농 청년에게 지원하는 억대 대출을 받으라고 권한다. 대출받아 땅을 사거나 비닐하우스나 스마트팜을 지어 대농으로 발돋움하라는 얘기다.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고생하면 시골에서 잘살 수 있다”고 조언해 준다. 어떤 작물이 잘 팔릴지, 어떻게 마케팅할지도 알려 준다. 먼저 와서 성공한 사람들 사례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외울 정도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담은 조언이지만, 꼭 돈만 좇아가야 하는지, 청년이 농촌에서 돈 버는 길은 그런 것뿐인지 의문이 든다. 안정적으로 월급 받는 일자리가 많아지면 청년들 귀농·귀촌이 늘어날까? 나를 비롯한 주위 귀농·귀촌 친구들은 이미 도시에서 그런 일자리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고됨과 불안을 느끼고 고심 끝에 지역으로 온 경우들이다. 그렇다 보니 다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벌어먹고 살아간다.

“솔직히 일년도 못버티고 나올 거라고 본다.”

지역으로 들어가겠다는 내게 아버지가 했던 말이다. 나는 버티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돈 안벌고 신선처럼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생의 끝까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일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기에 소농을 기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곳에 필요한 일, 마음에 내키는 일들을 찾아 해나가고 싶다. 사회가 규정하는 일자리가 아닐지라도.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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