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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2022년의 과학들

등록 2022-12-08 19:08수정 2022-12-08 19:35

2022 년의 과학은 닥쳐올 재난에 대비하거나 이미 발생한 재난에 대응하는 일에 자주 호출됐다. 과학은 불안정한 지구와 그 위에 사는 인간을 동시에 이해하고 대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나, 지구와 인간이 겪는 변화가 너무 격렬하고 복잡해 과학이 모든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2022년 6월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우주를 향해 발사되고 있다. 고흥/사진공동취재단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2022년 6월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우주를 향해 발사되고 있다. 고흥/사진공동취재단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2022년에도 과학자들은 뉴스에 나오든 말든 각자 연구를 하고 논문을 발표하면서 많은 성취를 이뤘을 것이다.

과학자가 아닌 이들에게 올해의 과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2022년의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또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도록 해줬을까. 2022년의 과학은 누구를 위해 혹은 무엇을 향해 작동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2022년에는 과학자가 아닌 이들도 뭔가 과학적으로 놀라운 일, 멋진 일이 마침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여름 수학자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한 것이 특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수상 사실 자체도 큰 영감을 줬지만, 그가 현시대 수학 연구의 의의에 관해 평가한 것도 흥미로웠다. 그는 유력한 필즈상 후보로 거론되던 지난해 과학잡지 <에피>에 실린 인터뷰에서 과거 어느 황금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 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때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수학자들이 더 긴밀히 연결되면서 “정말 인류가 하나의 원팀으로서, 하나의 전체로서 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원팀’이라니, 놀랍고 반가웠다.

우리는 또 올해 우주에 자리를 잡고 놀라운 사진을 찍어 보내기 시작한 제임스웹 망원경을 통해 잠시나마 ‘원팀’ 비슷한 것이 됐다. 지금까지 지구에 살다 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우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조금 먹먹한 기분으로 우주는 무엇인지 또 인간은 무엇인지 답 없는 물음을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분명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과학의 역사에서 꽤 멋진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만 같다.

국내에서는 고생 끝에 지난 6월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항공우주 분야 과학자들이 그와 비슷한 기분을 맛봤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팀이며 국민의 응원을 받으면서 과학기술 역사에 남을 꽤 멋진 과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2022년에는 여러 분야에서 우리를 들뜨게 하는 과학적 사건이 많았다.

그러나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2022년의 과학 언저리에는 고통스럽고 답답한 일도 많았다. 2022년의 과학은 닥쳐올 재난에 대비하거나 이미 발생한 재난에 대응하는 일에 자주 호출됐다. 과학은 불안정한 지구와 그 위에 사는 인간을 동시에 이해하고 대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나, 지구와 인간이 겪는 변화가 너무 격렬하고 복잡해 과학이 모든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빠르게 잊히고 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름에는 서울과 포항을 포함한 곳곳에 비가 퍼붓고 물이 들이치더니 가을에는 호남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제한 급수를 해야 할 정도였다. 얼마 전에는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는 것만으로 수백만명의 온라인 소통이 끊긴 것은 물론, 포털 검색과 택시 호출, 내비게이션 사용, 온라인 결제와 송금 등 일상생활이 큰 지장을 받기도 했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취약하고, 우리 사이의 연결은 불안하다. 여러 겹의 곤경 앞에 우리는 쉽게 갈라지며 과학도 이를 다 막아주지 못한다.

때로는 ‘과학’과 ‘과학적’이라는 말이 우리를 갈라놓는 데 쓰이기도 했다. 특히 과학을 정치와 대립하는 것으로 설정하고서, 반대편이 하는 일은 정치적인 것으로 우리 편이 하는 일은 과학적인 것으로 이름 붙일 때가 그랬다. 가령 2022년에 자주 등장한 ‘과학 방역’이라는 구호는 언제나 과학과 정치의 결합일 수밖에 없는 방역을 둘 사이의 대립으로 규정해버렸다. 감염병 대응에는 과학도 필요하고, 정치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과학과 정치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반대편은 정치적이어서 무능하고 우리 편은 과학적이어서 훌륭하다는 이분법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을 어색한 수식어로 가져다 썼다. 이런 편가르기를 위한 과학과 정치의 이분법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를 놓고 과학과 정치가 긴밀히 소통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과학을 매개로 삼아 어떤 대의를 함께 추구할 수도 있고, 과학을 핑계로 삼아 편을 갈라 싸울 수도 있다. 2022년의 과학은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보여줬다. 2023년에는 해마다 더 어려워지는 지구와 인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과학과 정치가 더 밀접하게 연결되기를, 그러한 대의에 참여하는 과학을 더 많이 응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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