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오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정교회 성탄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11월7일에 일어났는데, 10월혁명이라 불린다. 러시아 동방정교회의 율리우스력에 따라 10월25일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서방과 한국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크리스마스 휴전’도 않고 공격을 계속한다는 비난조 보도를 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의 성탄절은 율리우스력에 따라서, 그레고리력의 1월7일이다. 러시아가 크리스마스 휴전을 한다면 1월7일에 하는 것이고, 실제로 1월7일에 크리스마스 휴전을 선포했는데 우크라이나는 이를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해 4월에 한국으로 피난 온 고려인 나탈리아 서(35)에게 이 전쟁의 시작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한 2월24일이 아니다. 1주일 앞서 자신이 살던 크라스니루치에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쏟아진 2월18일이다. 현재, 안산의 고려인 마을에서 일종의 난민으로 지내는 서씨는 앞서 몇년 동안 진행된 돈바스 내전과는 달리 그날의 포격은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전쟁으로 다가왔기에 피난했다고 말했다. 서씨를 비롯한 돈바스 지역의 적지 않은 주민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불분명하다.
서방은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며 러시아의 모든 행위를 악마화한다. 크리스마스 휴전을 둔 프로파간다가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이 전쟁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략은 분명 비판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프로파간다가 작동하면서 전쟁을 중지할 타협과 협상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점 역시 심각하게 봐야 할 문제다.
서방이나 한국에서는 지난해 9월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 바뀌어 러시아가 곧 몰락할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4월에 키이우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낸 데 이어 9월 이후에는 러시아가 침공 이후 점령했던 돈바스 북부 지역을 시작으로 남부의 헤르손까지 탈환했다. 이는 분명 러시아의 고전을 드러낸다. 하지만 러시아가 패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기보다는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러시아가 무기와 군수, 병력이 바닥났다고 보도가 연일 나오나 그 점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더 심각하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11월9일 뉴욕의 한 연설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병사가 10만명씩 사망하고, 4만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숨지고 3000만명이 난민이 됐다고 확인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11월30일 우크라이나 병사 10만명과 민간인 2만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가 곧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우크라이나 인구는 4300만명이나 외국으로 간 피난민, 러시아계 주민 등을 제외하면 2000만~2700만명이어서 최대 징집 가용 남성인구는 300만명에 불과하다. 이미 100만명이 징집됐고, 나머지는 신체적으로 징집이 불가하거나 다른 필수 직종에 근무해야 한다. 징집된 100만명 중 전투에 나설 젊은층은 20만~30만명에 불과하다. 10만명이 전사했다면, 우크라이나로서는 치명적인 병력 부족이다. 노지원 <한겨레> 기자의 키이우 현지 보도를 보면, 50대 남성들이 새로 징집되고 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벨퍼센터는 러시아 문제를 객관적으로 전하려는 <러시아 매터스>라는 온라인 저널을 운영한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작전참모로 근무했던 앨릭스 버시닌 전 미군 중령은 이 저널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앞에 놓인 것’이라는 분석에서 현재 러시아의 ‘화력 중심 소모전’ 대 우크라이나의 ‘국지적 기동전’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러시아는 전술적 상황이 불리할 때마다 후퇴하면서 자원을 신중하게 보전했고, 우크라이나는 국지적으로 성공적인 반격을 했지만 전략적 자원을 소모했다고 진단했다. 전쟁이 계속되면, 양쪽은 특단의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서방은 인공지능(AI) 무기를 본격적으로 시험할 유혹에 빠지고, 러시아는 핵무기로 반격할 우려가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스펙테이터>에 ‘또 다른 세계전쟁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기고에서 러시아의 침공 이전 경계선이 바람직하나 현 전선에서라도 정전을 하고 영토 문제는 주민투표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주민투표가 이뤄진다면, 러시아는 2월24일 이전에 점령했던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 지역만을 얻을 것이다. 키신저는 전쟁이 계속되면, 인공지능 무기가 투입되는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고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도 <블룸버그뉴스>에 ‘동부전선, 이상 있다’라는 기고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며, 2023년은 세계대전의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는 편을 갈라서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우크라이나 주민과 인류 모두를 참화로 몰고 있다. 인류는 지금 다시 그 이성을 시험받고 있다.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