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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본 언론의 서글픈 자화상

등록 2006-03-09 18:28

박중언 도쿄 특파원
박중언 도쿄 특파원
아침햇발
연초의 씁쓸한 기억이다. 일본 유력 <아사히신문>의 개혁 방안에 관한 취재를 하려고 담당 간부에게 연락해 인터뷰 약속을 했다. 그런데 한국언론재단이 나중에 끼어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언론재단에서 이 간부의 한국 초청을 추진하면서 국내 언론사 인터뷰를 삼갈 것을 부탁했다. 아사히 간부는 언론재단과의 관계를 내세우며 양보를 요구했으나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간부는 이번에는 나의 항의가 무례하다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언론재단 담당자는 인터뷰 약속이 이미 돼 있는지 몰랐다고 해명해 왔다. 그러나 언론 지원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자기네 행사를 내세워 언론 취재를 막으려는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아사히 간부의 태도는 더욱 예상밖이었다. 약속을 어기게 됐으면 사과해야 마땅할 터인데 되레 공세에 나선 것은 내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

당사자들이 반론을 펼 수 없는 자리에서 뒤통수를 치겠다고 이 얘기를 꺼낸 것은 결코 아니다. 극우세력의 집중공격에 시달리는 게 안쓰러울 따름인 아사히신문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단지 약속을 깨면서도 너무나 당당한 모습에서 잊고 지내기 쉬운 일본 사회의 ‘속살’을 다시금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결정권자는 자기인데 왜 말이 많으냐’는 것이었다. 나는 도의적 차원에서 항의한 반면, 그는 ‘힘의 논리’로 묵살한 셈이다.

이 간부의 태도는 이른바 일본의 ‘힘있는’ 취재원을 빼닮았다. 그동안 일본 기자들로부터 정·관·재계 인사 취재에 대한 푸념을 심심찮게 들었다. 한 기자는 관료에게 몇마디 들으려 사무실 앞에서 죽치고 있거나 화장실까지 쫓아간다고 했다. 한 외무성 과장(외상·차관이 아니라)은 많을 땐 기자 예닐곱이 밤늦게까지 자기집 앞에서 기다린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기자들에게 대놓고 호통치고 면박주는 인사들도 수두룩하다. 담당 정치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기사를 썼다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너서클’에서 추방당한 기자도 적지 않다.

이것이 일본 기자와 정치인·관료 사이의 뒤틀린 역학관계다. 강자 앞에선 머리를 조아리고 순응하는 게 상식으로 돼 있다. 일본이 미국이라면 납짝 엎드리는 것처럼. 선처를 애걸하지 않고 항의한 나는 바로 이런 ‘일본식 상식’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민주화한 나라들 가운데 일본만큼 힘의 논리가 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곳도 별로 없다. 조금 단순화하면, 칼이 지배한 사무라이 문화와 절대적 충성을 강요한 ‘천황제’ 제국주의가 강자에게 순종하는 일본인의 원형질과 문화를 빚어낸 것으로 보인다. 널리 인용되는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타인의 눈을 두려워하는 ‘수치의 문화’로 일본인의 행동을 해석했지만, 그 바탕에는 지배질서에 대한 ‘순종의 문화’가 깔렸다고 생각한다. ‘고개 숙인 언론’은 이 문화의 부산물인 동시에 그것을 공고히 해 온 공범이다. 한국의 일부 언론처럼 횡포를 부리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비굴하면 더더욱 안 된다.

이라크 파병, 왜곡 교과서, 헌법 개정 등 주요 현안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일본인은 많고 이들의 모임도 활발하다.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한국보다 한결 튼실하다. 그렇지만 전국 규모는 극히 드물고, 이들이 국민적 저항을 주도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여기에는 지배층에 더듬이를 고정시킨 채 시민세력을 무시하다시피해온 주요 언론의 탓이 크다. 강자의 일방통행식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일본 사회의 서글픈 현실이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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