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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근현대 문학계 최초 여성 작가…2차 가해에 억눌린 삶을 살다

등록 2023-01-19 18:28수정 2023-01-20 02:07

[나는 역사다] 김명순(1896~1951)

한국 근현대 문학 최초의 여성 작가였다. 1917년 소설 ‘의심의 소녀’가 공모전에서 2등으로 당선돼 등단했다. 1919년 창간된 최초 문예지 <창조> 동인으로 가입하고, 1920년 ‘조로의 화몽’이라는 산문시를 발표했다.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유학파 지식인이었다. 1922년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한국 최초로 번역해 소개했다. 한때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영화배우로 활약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잡지 <별건곤>은 배우 김명순이 동명이인이라고 한다. 다른 처지였다면 열심히 노력한 선구자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김명순이 겪은 일은 끔찍하여 글로 풀기 버겁다.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 유학생 시절에, 알고 지내던 조선인 유학생(훗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 된 이응준이라고 한다)으로부터 성폭행당했다는 것이다. 이응준이 결혼을 거부하자 김명순은 자살을 시도했다. 연구자 최혜실에 따르면 “(김명순이 쓴 작품에서) 이야기의 방향은 항상 ‘강간당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직접적으로 그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수필과 소설을 통해 이 사건을 “불명예한 일”이라거나 “큰 변이 일어났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뒤따라 일어난 일이 참혹하다. 2차 가해가 끊이지 않았다. 1915년 <매일신보>는 김명순이 며칠 동안 실종된 일과 이응준이 결혼을 거부한 일을 몇차례에 걸쳐 가십으로 지상 중계했다. 카프(KAPF)에서 활동한 작가 김기진은 김명순과 ‘신여성’을 여러차례에 걸쳐 공개 저격했다. 1927년에는 방정환이 신여성을 풍자한다며 김명순을 인신공격하는 기사를 썼다. 1939년에 소설가 김동인은 김명순을 문란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김연실전’을 썼다. 이 모두가 김명순에게 상처였다. 그는 한국에서 더 살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다.

피해자 정체성을 넘어 김명순의 작품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김명순은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연구자 심진경의 말이 맞다. 소설가 김별아는 김명순의 생애를 <탄실>이라는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김명순이 태어난 날이 1896년 1월20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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