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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국가와 얼굴

등록 2023-02-02 18:30수정 2023-02-03 02:38

국가가 거리에 나와 있는 시민의 얼굴을 촬영해 신원을 자동으로 확인하는 도구가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 기술이라면,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실시간 근접 얼굴인식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눈앞에 있는 친구와 선생님의 고유한 얼굴을 보고 익히면서 친교와 배움의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주변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얼굴인식기술. 게티이미지 코리아
얼굴인식기술. 게티이미지 코리아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지난 월요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 사항으로 바뀐 일을 보도하는 기사에는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 얼굴이 등장했다. 입학 이후 처음으로 교실에서 마스크를 벗고 친구와 선생님 얼굴을 마주하게 된 초등학생의 모습은 이번 조치의 의미와 효과를 잘 보여줬다. 마스크 착용의 기본 목적은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것이었지만, 일상에서 마스크는 얼굴을 가려 서로 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제 실내에서 조심스레 마스크를 벗고 타인을 대면하는 것의 가치를 고려할 만큼 팬데믹이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감염 위험이 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를 권고로 전환한 배경에는 어린아이들이 마스크 없는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도 깔렸다. 우리는 남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서로의 얼굴을 인식함으로써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과 감정을 교환하고, 자신이 다양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확인한다. 얼굴을 인식하고 그에 적절히 반응하는 것은 아이들이 익히는 삶의 기술 중 하나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면서 국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일만이 아니라 얼굴을 매개로 하는 사회적 관계에도 깊이 개입해왔다. 서로의 얼굴을 얼마나 많이 드러내고 가까이해도 되는지 국가가 직접 지정한 것이다.

마스크 착용이 권고 사항으로 바뀌면서 얼굴이 자유를 얻은 것 같지만, 우리의 얼굴은 여전히 국가의 관심을 받는 대상이다.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얼굴인식 기술로 인한 인권침해”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며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게 적극적 대응을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국가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시민의 얼굴을 직접 인식하고 식별하려는 시도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공공장소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국가가 직접 들여다보는 것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축시키고 부당한 감시 체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인공지능으로 인식하고 구별하기 더 쉽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특히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 기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관한 강력한 권고 의견을 냈다. “특정인의 얼굴 정보 등 생체인식 정보를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원거리에서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인권위 보도자료)이 공공장소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용될 경우 시민의 기본권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으므로 국가는 일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이런 기술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인권위는 국무총리에게 적절한 법률과 제도를 갖추기 전까지 공공기관이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것을 막는 “모라토리엄”을 시행하도록 권고했다. 인공지능이라면 무조건 많이 개발하고 많이 사용하라고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인권위의 뚜렷한 언어가 인상적이다.

국가가 거리에 나와 있는 시민의 얼굴을 촬영해 신원을 자동으로 확인하는 도구가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 기술이라면,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실시간 근접 얼굴인식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눈앞에 있는 친구와 선생님의 고유한 얼굴을 보고 익히면서 친교와 배움의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주변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반면 국가가 공공장소에서 한 사람을 발견하고 멀리서 그 얼굴의 정보를 추출해 데이터베이스 속 전체 인구의 얼굴과 비교하고 식별할 때 국가는 일방적으로 감시와 통제의 관계를 설정한다. 국가가 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할 때 이는 잠재적으로 모든 얼굴을 인식하고 추적하는 것이다.

얼굴은 자신의 것이면서도 끊임없이 타자가 개입하고 간섭하는 대상이다. 누가 보는지, 어떻게 보는지, 왜 보는지에 따라 얼굴은 다른 대상이 된다. 국가는 감염병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내세우면서 모두의 얼굴을 가리는 조치를 강제할 수 있었고, 시민 대부분이 이에 동의하고 협조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수많은 얼굴을 원격으로 실시간 분석하고 식별하는 일을 허용할 만한 “공익적 필요성”이 있는지, 또 그 필요가 인권위의 깊은 우려를 넘어설 만한 정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얼굴을 가진 우리 모두가 대면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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