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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대는 학문의 전당인가, 교수들의 안식처인가?

등록 2023-02-07 18:29수정 2023-02-08 02:38

서울대 정문. 김태형 기자 xogu555@hani.co.kr
서울대 정문. 김태형 기자 xogu555@hani.co.kr

[기고] 신창수 |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한국 최고 학문의 전당이라는 서울대학교는 높은 울타리를 갖고 있다. 다른 대학이나 기관들이 넘보기 힘든 학문과 경쟁력의 울타리라기보다 구성원끼리 쌓은 배타적인 울타리다. 이런 주장이 타교 출신 교수로서 25년6개월 동안 서울대에 재직하다 퇴임한 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그친 것이면 좋겠건만 그렇지 않다.

서울대 교수 90%는 서울대 학부 출신이다. 전세계 유수 대학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순혈주의다. 심지어 서울대라도 해당 학과 출신 아니면 사실상 다른 학교 출신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다른 학교, 다른 학과 출신은 일종의 ‘주홍글씨’를 달고 생활하는 셈이다. ‘저 교수는 서울대가 아니야’라는 수식어는 잘해도 붙고, 못해도 붙는다. 심지어, 특정 지역 출신 교수조차 소수다.

더 큰 문제점은 한번 교수로 임용되면 95%가 정년을 채운다는 점이다. 서울대 교수 3~5%만이 정년을 채우지 못하는데, 대부분 건강 문제 때문이고 극소수가 범죄에 연루돼서다. 사실상 누구나 서울대 교수가 되면 육체적, 법적인 문제가 없는 한 정년까지 재직한다.

서울대는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니 교수도 최고 대학인 서울대 출신이어야 한다는 순혈주의는, 연구자를 서울대 교수로 안주하게 한다. 다른 대학으로 옮겨갈 이유나 필요가 없다. 2012년도 <사이언스> 자료를 보면, 조사 대상인 미국 14개 대학에서 조교수 64% 정도가 최초 임용된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받는 정도다. 명문이라는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에서 정년을 보장받는 교수 비율이 36% 정도다.

학부 시절 선후배 혹은 스승·제자 사이로 조밀하게 얽힌 서울대에서 교수가 되고 무탈하게 정년을 보장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선후배 또는 스승·제자로 연결되는 구도에서는 문제 제기나 개선책이 묻히기 쉽다는 점이다. 제자요 후배이니 싫은 소리를 하면 매장되기 십상이다. 이런 환경이 학문 경쟁력에 과연 도움이 될까.

이런 분위기는 평균주의로도 이어진다. 무탈하게 지내는 다수와 성과를 내는 소수의 차이가 희석된다. 서울대 공대 교수 350명가량 가운데 50여명 정도만이 교육과 연구에 몸을 불사른다. 나머지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려놓고 묻어가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학교에서는 탁월한 교수들에게 보상으로 석좌교수 자리를 주거나 프로젝트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것도 보상책이 될 수도 있지만, 좀 더 혁신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금전적인 보상이 최선은 아니지만,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는 대기업 수준의 인센티브 정도라도 부여돼야 한다.

상상해본다. 같은 분야를 강의할 수 있는 15명 이상의 교수들이 모여서(예를 들어 공학수학, 4대 역학, 물리 및 화학) 시원적인 개념을 토론하고 강의 능력을 고양하는 집담회를 연다. 이런 집담회를 2년 이상 진행한다면 세계 최고의 온·오프라인 강의를 할 수 있다. 전공과목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미래사회에서 오프라인 강의만 고집한다면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기는 불가능하다.

공정한 신임 교수 임용을 위해서는 심사논문 평가를 외국에서 실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공계의 경우 세부적인 전공으로 들어가면 교수 임용 후보자가 누구인지 웬만하면 알게 돼 있다. 인문사회 쪽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교수 임용에서 정실주의를 배제하기 힘든 요소로 작용한다. 외부 평가를 반영하는 임용 과정은 복잡하고 부작용이 많다? 많이 들어본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서울대 개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특정 학부 출신 교수 임용 비율을 제한하고, 교수 임용 뒤 정년 보장 비율을 제한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운영체계에서는 꿈꾸기도 힘든 방안들이다. 4년마다 돌아오는 총장 선거는 서울대에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대학 개혁의 기회가 되기보다는 포퓰리즘과 파벌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돼왔다.

서울대가 교수들의 안식처가 아니라 학문을 연마하는 경쟁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총장직선제를 손봐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교수들이 선거운동원이나 정치인으로 바뀌는 환경이 돼서는 안 된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총장의 지도력이 보장돼야 하고, 선진국 명문대학들처럼 총장이 10년, 20년이라도 책임지고 학교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체제에서는 그런 지도력이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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