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편집국에서] 전정윤
사회정책부장
지난해 가족이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와 수술 과정을 지켜보고, 암 관련 자료도 찾아 읽었다. 암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암과 그 치료에 관해서는 꽤 많이 아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서울 큰 병원 병실은 암 환자에게조차 늘 부족했다. 잠시 입원했다가 큰 고비를 넘기면 곧장 퇴원해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식이요법과 면역력 강화 등 건강관리를 위해 병원 근처 암 요양병원에서 지내며 큰 병원의 항암치료를 받으면 좋다고들 했다. 가장 좋다는 곳을 수소문했지만, 환자 본인은 답답하다며 한사코 요양병원 입원을 거부했다. 집에서 스스로를 돌보며 항암 치료를 이어가는 강인함에 탄복했지만, 서울 큰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필수의료에 대한 나의 인식은 가족의 암 투병을 함께하면서도 딱 그 경험치만큼 보폭을 넓혔을 뿐, 대형병원이 몰려 있는 서울의 우수한 의료 환경, 그 밖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회정책부 박준용 기자가 지난 7일부터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를 통해 서울의 환자방 실태를 비롯해 지역 암 환자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다른 복지 담당 기자들도 서울-지방 사이 필수의료 격차 문제를 파고드는 연속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 기사들을 읽고 만지며, 익숙해서 간과해온 보건복지 용어 너머에 존재하는 의료 불평등에 관한 현실감각이 비로소 싹텄음을 고백한다.
사회정책부장은 교육·노동·복지정책을 담당하는 열명 남짓한 기자와 상의해 어떤 기사를 어떻게 쓸지 판단하고, 기자들이 보낸 기사가 독자들에게 좀 더 잘 전달되도록 정리하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필수의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정책 이슈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미처 몰랐던 쟁점’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초·중·고·대학을 다녔고, 중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다. 교육 담당 기자로 일한 적도 있어 교육만큼은 꽤 안다고 자신했다. 그럼에도 나와 내 아이가 경험한 입시교육을 넘어서면, 상식이 더 이상 판단 근거로 작동하지 않는 복잡계가 펼쳐졌다. 이주호 부총리를 비롯해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경험과 상식 역시 제한적이다. 자립형사립고를 만들어 고교 유형을 다변화하면 학생들의 개성·다양성을 살릴 수 있다며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입시교육이 획일화되고 고교서열화가 강화된 것도 그런 상식과 복잡한 현실이 충돌한 결과다. 나 역시 이런 ‘아는 함정’에 빠져 뱅뱅 맴돌 때가 있는데, 교육 기자들은 현장의 변화 양상과 맥락을 꼼꼼하게 파고들며 나와 독자들의 경계를 확장해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엔 이른바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긴장 가득한 나날이 이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대우조선해양과 화물연대 파업, 노동시간 유연화, 노조 회계 투명성 논란 등 노동 기사를 다룰 때마다 날로 겸손해졌다. 노조 활동이 당연한 회사에서 정규직 노동자로만 살아온 나의 세상은 기사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의 세계에 비해 너무나 협소했다. 거친 일터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규정하고 보호해야 할 제도는 오히려 이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합법적인 무법’에 가까웠다. 노동 담당 기자들은 국내외 노동법을 쉴 새 없이 오가며 그 합법의 모순과 위선을 들춰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교육·연금(복지담당)을 ‘3대 개혁’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이 ‘내가 아는 법과 원칙’으로 밀어붙이니 우리 부서는 ‘어쩌다 보니 3대 개악 부서’가 됐다. 현장 기자들은 좁은 상식의 경계를 넓히려 무던히 애쓰고 있으나 허망할 때도 많다. 화물기사들의 상식적인 안전운임제 연장 및 확대 요구를 철저히 찍어누른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상승하는 걸 보면서 헛헛했다. 그러다 며칠 전 어머니를 잃은 지인의 빈소에서 고인이 했다는 말을 듣고 답답함이 조금 누그러졌다.
뉴스를 읽으시던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화물연대가 틀린 말 하는 게 없던데, 그 파업을 강경진압 했다고 왜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는 거야? 나만 모르겠는 거야? 좀 가르쳐줘.” 고인의 순정한 물음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내 삶과 인식의 경계를 넓히며 쌓아올렸던 기사들이 누군가에게 가닿았다는 시그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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