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들에게 인류 번영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주고 세계 수학 연구역량의 상향 평준화하기 위한 ‘인류를 위한 수학' 프로젝트가 출범한다. 지역이나 피부색 상관없이 수학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내가 일하는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에서 ‘인류를 위한 수학'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업을 2024년 초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참여를 원하는 전세계 학자들의 연구와 교육활동 계획서를 지금부터 4월 중순까지 접수하고 있다. 지원 중심 주제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세계 수학 연구역량의 상향 평준화, 둘째는 인류의 당면과제 수행을 위한 수학적 방법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학 역사의 글로벌 연구다. 이 세가지 방향의 계획이 있는 연구자들에게 국제수리과학연구소에서 공동연구나 학회, 인터넷 강의와 세미나를 진행할 시설과 경비를 제공한다. 세 주제를 동시에 지원하고 활동 장소를 하나로 통합해 융합에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첫번째 주제는 경제, 사회-정치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 수학 역량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전반적인 노력을 대변한다. 개발도상국의 교육발전을 도모하는 이 프로그램은 유엔 산하를 비롯한 많은 기관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역량의 평준화는 학문적 전문성이 필요해 그런 국제기구에서 관할하기 힘들다. 그래서 몇몇 연구기관, 특히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있는 국제이론물리연구소는 제3세계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 중심으로 운영한다. 우리 연구소도 이런 노력에 동참하면서 트리에스테연구소와 협력도 계획하고 있다.
어쩌면 인류 당면과제에서 수학이 할 만한 역할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기후위기와 관련된 연구 대부분이 수학적 모델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기후 연구는 지구 대기의 평균적 상태의 패턴을 추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 대기는 공기와 수증기로 이뤄진 유체이기에 근본적으로 유체역학 방정식으로 관찰된다. 이 방정식들의 수치 해석적인 시뮬레이션은 계속 섬세해지고 있으며 여러 나라의 정책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후위기 외에도 ‘민주주의 위기'의 염려가 심화하는 시대다.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초월해 국민 의견을 효율적으로 대변할 만한 사회조직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들은 수학적 개념들을 이용한 사회선택이론을 연구해 왔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여론으로 통합하는 방법론 연구다. 그런데 고전적인 사회선택이론에 비해 지금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용성이 뚜렷한 이론을 만들어가는 흐름이 강하다. 예를 들자면 2019년 미국 웰즐리대학에 ‘수학과 민주주의 연구소'가 개설돼 활발한 활동을 주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지속 가능한 거시경제 형성을 위한 네트워크 이론, 데이터 과학과 사회복지, 급격히 발전해가는 통신문화 속에서의 보안, 인공지능의 인간적 제어 모두 수학적 연구의 대상이다. 여기서 열거한 예들 이외에도 인류복지를 도모하는 다양한 수학사업 계획이 제안되기를 기대한다.
수학의 세계사에 관해서는 이미 전에 언급한 바 있다. 수학의 전통에 대한 오해는 세계 많은 지역에서 수학 역량 개발을 저해하고 있다. 그동안 특정한 고대 그리스 전통에 관한 신화적 믿음과 유럽 중심의 해석은 많은 사람이 ‘수학은 서양문물'이라는 편견을 갖게끔 했고, 그런 편견은 세계 대부분 지역의 수학 후진화에 기여해 왔다. 18~19세기부터 축적돼 온 역사학의 오류들을 정정하는 작업은 많은 학자의 협업을 해야 하고 국제수리과학연구소의 집중적인 지원이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 세계 젊은이의 42%가 아프리카에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 사실 하나만 봐도 자기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의 개발상태를 추정하는 것의 비효율성이 분명해진다. 만약 아프리카 상당 부분이 저개발 상태로 남아 있을 경우, 더군다나 분쟁과 기아로 시달리는 지역이 많을 경우, 그것은 좋든 싫든 전세계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인류를 위한 수학' 프로젝트는 수학자들에게 인류 번영에 직접 도움이 되는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목표를 가지고 출범한다. 평소에 순수수학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도 적극 참여하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바란다.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당히 희망적인 일 하나는 이미 나타난 세계 수학계의 호응이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격려 이메일이 오고 함께 일하자는 연구소들이 줄을 이으며, 필즈상 수상자 둘을 비롯한 수학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 사업선정위원회가 쉽사리 구성됐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인류를 위하는 마음의 보편성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