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6411의 목소리] 외국인투자기업은 법원 판결·단협 위반해도 괜찮다고요?

등록 2023-02-15 18:46수정 2023-02-16 02:08

고용노동부에 단체협약 위반, 부당노동행위, 불법 대체생산 등 일본 덴소자본의 위법사항을 진정했지만 ‘외국인투자기업이어서 처벌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잠든 규칙은 권력이 공격받을 때 선택적으로 호출된다’(드라마 <송곳>)는 말은 현실이었다.

지난 1월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원들이 공장 1층을 지키고 있는 모습. 한국와이퍼분회 제공
지난 1월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원들이 공장 1층을 지키고 있는 모습. 한국와이퍼분회 제공

최윤미 | 한국와이퍼 해고예정노동자

“귀하와 회사의 고용관계는 2023년 2월18일부로 자동적으로 종료됩니다.”

1월16일 우체국 등기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회사가 어려워 문 닫는다는데 무슨 수로 막냐고. 회사청산에 의한 해고는 정당한 해고 아니냐고.

하지만 당연한 해고는 없다. 한국와이퍼㈜가 법인 청산과정에서 노조와 합의없이 대량해고를 통보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민사10부(재판장 남천규)는 지난달 3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한국와이퍼를 상대로 낸 단체협약위반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단체협약 절차에 따른 합의 없이 조합원들을 해고해서는 안된다”며 인용 결정을 내렸다.

한국와이퍼는 현대자동차 완성차에 들어가는 와이퍼시스템 중 핵심부품을 만든다. 일본 덴소자본이 100% 지분을 소유한 외국인투자기업이다. 2022년 7월7일 원청인 덴소코리아㈜는 와이퍼시스템 사업을 매각하면서 한국와이퍼를 청산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월16일 209명 조합원 전원에게 해고통지서가 날아왔다.

내가 26살부터 44살이 된 지금까지 18년 동안 일해 온 한국와이퍼는 여성노동자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 주야 12시간 맞교대, 쉴새없는 컨베이어벨트 작업은 만만치 않은 작업환경이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버텨내야 했다. 그러던 우리에 회사 청산과 해고통보라니, 삶의 막다른 골목 부닥친 것처럼 막막할 뿐이다.

회사는 2012년부터 매출액과 적자가 함께 커지는 기이한 재정구조가 되더니 이것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모회사이자 원청인 덴소코리아와의 내부거래가 그 원인이었다. 덴소코리아는 한국와이퍼 생산품을 제조단가보다 낮게 사들여 이윤을 확보하고, 이를 일본 덴소본사에 보내는 방식으로 이윤을 이전했다. 2018년 한국와이퍼는 신차수주가 없어 물량감소로 인한 폐업 혹은 구조조정이 의심됐다. 회사 상황을 피부로 느꼈던 우리는 2018년 6월 노동조합(전국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를 만들었다. 노조는 2020년부터 적자구조를 해소하고 고용을 보장하라며 합법적으로 쟁의권을 얻어 투쟁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청산을 ‘기획’했다는 것과 청산시나리오의 실질적 기획자가 모기업인 일본의 덴소자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합은 덴소자본에게 고용보장을 요구하면서 회사 회생을 위해 고통을 나누겠다고 했다. 조합은 2021년 덴소자본으로부터 청산 때 노조의 합의권과 고용보장 약속을 받아냈다. 당시 노사 합의에 조합원들은 뛸 뜻이 기뻐하며 투쟁으로 인한 회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주말 무료노동까지 마다하지 않고 제품 생산에 노력했다.

하지만 덴소자본과 회사는 단체협약을 뒤로 한 채 청산을 비밀리에 준비했다. 회사 해산 및 청산은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한 사항이라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를 준비하고, 외국인투자기업은 한국에서 처벌이 어렵다는 점을 활용해 단체협약을 무효로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회사가 문 닫는다고 하면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자진 퇴사할 것이라고 판단한 회사는 청산 발표와 동시에 조기퇴직제도(희망퇴직)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부가 덴소자본과 한국와이퍼를 제대로 조사하라며 2022년 11~12월 서울 국회 앞에서 44일간 단식농성했다. 동료들은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단체협약 위반, 부당노동행위, 불법 대체생산 등 일본 덴소자본의 위법사항을 진정했지만 ‘외국인투자기업이어서 처벌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잠든 규칙은 권력이 공격받을 때 선택적으로 호출된다’(드라마 <송곳>)는 말은 현실이었다. 한국 노동조합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을 내던진 일본 덴소자본을 처벌할 법과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인가. 고용창출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주는 온갖 혜택을 받아왔던 외국인투자기업이 청산 방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노동자를 해고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단 것인가. 정부는 ‘외국인투자기업은 원래 그래 왔다’고 얘기하는 대신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을 만들어야 한다.

이 투쟁을 하기 전에 12살 딸아이가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세금은 왜 내야 해?” 잠시 생각하다 “국민의 권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국가를 잘 운영하라고 세금을 내지”라고 답했더랬다. 그 대답을 기억하던 딸아이가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엄마를 보더니 “세금 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제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윤석열 정부가 답해줬으면 좋겠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그로 보내주세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번엔 “의사들이 졌다” [신영전 칼럼] 1.

이번엔 “의사들이 졌다” [신영전 칼럼]

윤 정부의 연금개혁안, 여성 반하는 방안만 모았나 [왜냐면] 2.

윤 정부의 연금개혁안, 여성 반하는 방안만 모았나 [왜냐면]

프랑스 혁명 후, 분리된 ‘수사·기소’…“다 주면 폭군 나와” 3.

프랑스 혁명 후, 분리된 ‘수사·기소’…“다 주면 폭군 나와”

여섯번째 대멸종이 올까 [강석기의 과학풍경] 4.

여섯번째 대멸종이 올까 [강석기의 과학풍경]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해야 [왜냐면] 5.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해야 [왜냐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