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서울시의 시민분향소 철거 예고를 규탄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서로 목도리를 묶어 잡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지영 | 이슈팀 기자
힘들고 슬플 때마다 일기를 썼다. 대학 생활에 지치거나, 연애가 뜻대로 안 될 때,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매번 낙방할 때,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도 터놓지 못한 미숙하고 거친 생각들을 두서 없이 일기장에 쏟아내곤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희망도 적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행복했던 기억보다 암울하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경험과 상념들을 일기장에 쏟아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그런 온갖 감정을 일기장에 털어놓고 나면, 힘든 일도 별일 아닌 듯이 여겨졌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은 차분해졌고 그래 앞으로 잘되겠지, 근거 없는 나름의 용기를 얻곤 했다. 불안하고 미숙했던 그 시절 일기장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것 같기도 하다.
2년여 전 기자가 된 뒤론 한동안 일기장을 펼치지 못했다. 힘든 일이 지나면 또 다른 힘든 일이 찾아오는 ‘고군분투의 일상화’라는, 기자의 고된 일상은 일기장을 펼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갑자기 간절한 마음으로 일기장을 찾게 됐다.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이틀 뒤였다. 참사 한가운데서 목격한 장면들을 도무지 혼자 감내할 수 없었다. 골목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희생자들의 운동화와 옷가지들, 끝없이 이어지던 119구급차 행렬, 여기저기 울고 있는 시민들, 그런 그들을 붙잡고 ‘현장에 있었느냐?’고 질문하던 나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장면들과 생각들, 알 수 없지만 뭔가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일기장에 쏟아냈다. 하지만 전과 달리 일기를 쓴 뒤에도 복잡한 심경은 정리되지 않았고 마음속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했다.
참사 일주일 뒤 ‘이태원 참사 추모 포스트잇들을 취재해보라’는 선배 지시에 무작정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다시 찾았다. 이걸 언제 다 기록으로 남기나…. 지하철역 출구부터 인근 건물 벽까지 가득 채운 포스트잇 더미를 보고 막막함이 앞섰다. 그래 일단 모으자.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으로 정신없이 온갖 사연이 담긴 포스트잇들을 찍었다.
이후 팀원들과 함께 우리가 모은 포스트잇 메시지 3584개를 정리하면서, 가장 필요했던 건 휴지였다. 희생자들의 이름에 내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겹쳤다. 참사 당일 목격했던 장면들도 소환됐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한없는 미안함과 그리움, 사랑의 말들을 마주한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애도의 기록’을 준비했던 2주 동안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들 속에 파묻히면서 ‘기자 일’의 무거움에 때때로 숨이 막혔다.
그런 과정을 통해 포스트잇에 담겨 있던 여러 추모의 말들을 기사로 정리해 세상에 내보내게 됐다. 생각지 않게도, 이 과정에서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수많은 메시지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위로가 됐던 걸까.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여러 감정을 마주하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트라우마를 조금씩 치유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그날’에 머문 채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닥쳐온 숨막히는 일상을 버티는 이들이 있다. 서울광장에, 녹사평역에 희생자 분향소를 차렸던 유가족들이다. 그들이 슬픔을 기억하는 공간이 하필 수많은 발길이 지나는 곳이어서였을까. 서울시는 15일 유족들이 마련한 서울광장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참사의 기억을 공유하고, 다시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유족들의 마음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걸까.
혼돈 속에서 헤매던 시절 내가 일기장에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곱씹으며 위로받았듯이, 유가족들 또한 타인들과 슬픔을 공유하며 힘을 얻고 다짐하는 ‘위로의 일기장’이 필요한 건 아닐까. 슬픔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그 슬픔을 내뱉도록 하고, 그 목소리에 공명하고픈 이들이 있다면 그 아픔을 보듬도록 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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