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4일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400여개 단체로 구성된 ‘9월 기후정의행동’이 주최한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 중이던 이달 초, 시드니 숙소의 뉴스 채널에서는 상어의 공격을 받고 숨진 10대 소녀 이야기가 속보로 거듭 나왔다. 사람이 있는 해변이나 강에 상어가 출몰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강 하구에서 수영하다 참변을 당한 소녀의 소식은 현지인들에게도 충격인 듯했다. 이 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최근 상어의 공격이 늘고 있는데, 이는 기후위기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온 상승 등으로 생태 환경이 바뀌어 물고기들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상어와 인간의 불행한 만남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인 오스트레일리아는 2월이 한여름이라, 해변은 평화롭게 북적였다. 하지만 방송 뉴스는 심란했다. 국토 곳곳에서 홍수와 가뭄, 폭염, 산불이 번갈아 일어나고 있었다. 이 나라는 2019년 말과 2020년 초 반년 가까이 이어진 산불로 한반도 면적의 85%와 맞먹는 숲이 불타고 코알라 등 야생동물 수억마리가 숨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재난 역시 기후위기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석탄과 철광석 등이 주요 수출품인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라는 아름다운 산호초 군락이 백화현상으로 절반가량 사멸했을 정도다. 멜버른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 직장인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한 정치인들에게 우리 세대는 분노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노는 선거에도 반영됐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자유-국민연합 스콧 모리슨 총리가 물러나고 노동당 앤서니 앨버니지가 새 총리가 됐다. 약 9년 만의 정권교체를 낳은 선거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기후위기였다. <시엔엔>(CNN) 등 외신은 재난을 겪은 유권자들이 기후 관련 정책에 가장 주목했다고 분석했다. 유권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인 모리슨을 꾸짖고, 강력한 행동을 약속한 앨버니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기후가 정권교체에 영향을 준 것은 오스트레일리아뿐만이 아니다. 옆 나라인 뉴질랜드에서 2017년 당시 세계 최연소 총리(당시 37살)가 된 저신다 아던의 노동당 역시 녹색당과 손잡고 집권한 뒤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본격화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등 최근 남미의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를 이끄는 지도자들도 강력한 기후행동을 약속해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2021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조 바이든의 핵심 정책도 적극적 기후위기 대응이다. 그의 최대 입법 성과로 꼽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대기업 증세 등으로 재원을 조달해 재생에너지 등 기후위기 대응 투자와 의료 보장을 늘리는 게 골자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변화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두 나라가 2016년 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으로 꼽힌 전력 때문이다. 영국 기후 전문매체 <클라이밋 홈 뉴스>는 환경단체인 기후행동추적(CAT) 분석을 인용해 네 나라를 ‘기후악당’으로 꼽으면서 “한국이 기후악당들을 선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고, 석탄화력발전소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 등이 이유였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달리 한국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국제단체인 저먼 워치와 뉴클라이밋 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2023년 기후정책 이행평가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60개국 중 57위로 꼴찌 수준이었다. 기후위기 대응 핵심 중 하나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등이 미흡해서였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6%로 낮추고, 대신 원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높였다. 환경단체들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업체에도 요구하는 ‘RE100’(사용하는 전기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 원전 전기를 인정하지 않고, 해수면 상승과 대형 산불 등 기후재난으로 해안지대 원전이 더 위험해진다며 이를 ‘시대 역행적’이라고 비판한다.
지난해 국내 대선에서는 기후위기가 핵심 의제가 되지 못했지만, 2022년 물난리 같은 재난을 아마도 몇번 더 겪은 뒤가 될 다음 총선, 대선은 분위기가 다를 것이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이 ‘기후악당 정치인’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표를 얻고 싶다면, 기후위기 대응에 진심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