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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범선의 풀무질] 자기살림

등록 2023-02-23 18:35수정 2023-02-24 02:08

권력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것보다 내 삶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내가 살아야 남을 살릴 것 아닌가? 지구살림, 생명살림보다 최우선시되는 것이 자기살림이다. 삶은 권리이지만 살림은 의무다. 삶과 살림의 조화가 사람의 도리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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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요즘 몸이 자주 아프다. 작년에 대상포진을 앓은 이후로 잔병치레만 한다. 과로가 원인이다. 나는 벌인 일이 많아서 쉬지를 못한다. 지난주에도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곧바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다. 밀어둔 미팅과 인터뷰를 소화하고 나니 몸살 기운이 도졌다. 여독이 덜 풀려서 그런 것 같다. 어제저녁 푹 쉬고, 버섯누룽지탕을 먹고, 아침에 일어나 짧은 요가를 하고 나니 겨우 글 쓸 힘이 난다.

감기, 몸살이면 다행이다. 주변에 무기력증과 우울증, 공황을 호소하는 친구가 많다. 나는 특히 예술과 사회 운동을 하다 보니 비교적 감수성이 풍부한 동료, 동지가 대부분이다. 자기와 타자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들이 주로 예술가, 운동가가 되기 마련이다. 무당 팔자랑 비슷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신기가 있는 사람들, 신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거나 그냥 넘어갈 문제를 천착하고 공감하며 분개한다. 기후생태위기와 페미니즘, 비거니즘 모두 그러하다. 공기 중에 부조리와 폭력이 느껴지니 가만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사랑과 연대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하지만 다 같이 모여서 바꿀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나는 군 제대 이후 지난 5년간 활동하면서 여러 동지를 잃었다. 마치 전쟁터에서 전우가 하나둘씩 쓰러져간 기분이다. 번아웃을 호소하며 잠적해 버리거나 해외로 ‘탈조선’을 감행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탓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올시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다. 이 땅에서 온전히 살아남는 것이 제일 과제다.

지난 세기 한국인은 화병에 걸렸다. 억압과 통제에 화가 나서 숨이 턱턱 막혔다. 심장에 대못이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세기 한국인은 소진된다. 과잉과 방종에 화가 나지만 금방 타서 없어진다. 메타버스에 붕 떠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진공 상태에 갇힌 것처럼 숨이 막힌다. 이제 타살보다 자살이 많은 시대다. 권력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것보다 내 삶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내가 살아야 남을 살릴 것 아닌가? 지구살림, 생명살림보다 최우선시되는 것이 자기살림이다.

자기계발과는 다르다. 스스로 일깨운다는 뜻의 자기계발은 결국 경쟁에서의 승리가 목적이다. 일반적인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는 성공, 즉 돈 버는 법을 가르친다. 부자가 되는 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 곧 자기계발이다. 무한 경쟁을 전제로 두고 그 시스템을 어떻게 해킹할까를 고민한다. 알다시피 억만장자 누구누구의 책을 읽고 따라 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자기계발서 읽고 사업했을까? 더 중요한 것은, 성공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행복해지는 법에 관한 책을 읽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은 텍스트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살림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 살리는 것이다. 일단 살아야 행복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다. 자기계발을 영어로는 ‘셀프-헬프’(self-help)라고 한다. 스스로 돕는다는 뜻이다. 자조(自助)가 더 적절하다. 자기살림은 ‘셀프-케어’(self-care) 또는 ‘셀프-세이브’(self-save)가 맞다. 스스로 돕고 돌보고 살리는 일을 우리는 너무 등한시한다.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스스로 채찍질을 하게 된다. 그러한 구조에 저항하는 일을 하는 예술가와 운동가도 마찬가지다. 죽이는 사회에 맞서 죽도록 싸우고 있다.

나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고 싶다. 사랑하는 식구들과 오래오래 살고 싶다. 삶은 권리이지만 살림은 의무다. 삶과 살림의 조화가 사람의 도리다. 잘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살려야 한다. 내가 정한 자기살림의 신조를 읊어본다. “너 자신을 돌보라. 생명은 신성하며 너의 몸이 그 사원이다. 사랑으로 짓고 용기로 지켜라. 몸 안에 무엇을 모실지 주의하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오늘 저녁에는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고 꼭 집밥을 해 먹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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