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광진구 광장동 광장초등학교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들과 안 쓴 학생들이 한반에서 같이 수업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김민제 | 사회정책팀 기자
아침 8시20분이 지나자 교문 앞에 학생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 책가방을 멨는데 어쩐지 표정만큼은 가벼워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익숙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코 아랫부분을 일률적으로 가리던 마스크가 사라지고 입매가 드러났다. 거의 3년 만에, 어쩌면 입학하고 처음으로 마스크 없이 하는 등교다. 한 학생은 코로 공기를 잔뜩 들이마신다. 다른 학생은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 어색한지 입을 비죽 내밀다 친구와 눈이 마주쳐 웃음을 터뜨린다. 아이들의 얼굴에 전에 없던 미소가 드러난다. 학교엔 활기가 돈다.
지난 1월30일 아침,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로 향하며 이런 장면을 상상했다. 그날은 2년3개월 만에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어디서나 편히 숨 쉬는 일상을 되찾은 첫날이었다. 그 첫날을 맞아 언론사 기자들도 사람이 몰리는 실내 공간 곳곳으로 취재를 나갔는데, 교육 담당 기자인 나는 학교로 향했다. ‘마스크 사라진 학교…반가운 친구들, 선생님 얼굴’. 밝고 희망적인 기사 제목도 미리 생각해뒀다.
등교 시간 맞닥뜨린 장면은 기대한 ‘그림’과 거리가 멀었다. 일제히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까지 바란 것은 아니지만 한두명을 빼고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일상 회복이라는 수식이 무색했다. 오늘부터 실내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고 알리는 교사의 공지에 마스크를 내리고 신이 난 듯 웃어 보인 아이도 있었지만, 마스크를 벗지 않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숨 쉬는 게 불편하긴 한데 코로나가 더 걱정돼요. 교실에 들어가도 마스크 안 벗을 거예요.” “친구들 얼굴 보는 거요? 낯설 것 같은데.” “‘마기꾼’(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말)이라고 놀림받을까 봐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도 친한 애들이 벗어야 벗을래요.” 잊고 있던 당연한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지난 3년간 모두의 일상을 정지시킨 팬데믹이 그렇게 쉽게 안녕을 고할 리 없다.
하긴 회복되지 못한 건 취재하는 내 쪽도 마찬가지였다. 채 5년이 안 되는 기자생활 중 절반 이상을 코로나19와 함께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고 또 전파하지 않는 것이 기사를 잘 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시절도 있었다. 전화 통화로 취재하고, 유튜브 생중계를 보고 취재하고, 보고서를 읽고 취재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 뒤 어깨와 귀 사이에 휴대폰을 끼운 채 취재원과 통화하는 게 가장 익숙한 자세가 되어 버렸다.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성장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기동성이나 관찰력, 순발력처럼 그럴싸한 능력보다는 솟아오른 승모근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이제 코로나19는 취재에 더 이상 지장을 주지 못하고 현장에 나가 사람을 대면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고 이전의 기자생활이 돌아왔다고 보긴 어렵다. 불가피하게 택한 비대면 취재에 어느새 몸이 적응해버린 탓이다. 행인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부터 취재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신속하게 기사 방향을 수정하는 일까지, 현장에서 으레 해야 하는 일도 오랜만에 하려니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지난 3년간 팬데믹이 바꿔놓은 업무 관행 또한 그렇게 쉽게 돌아올 수 없나 보다. 역시 안녕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날 마스크를 하고 등교한 어떤 2학년 학생은 “마스크를 벗고 수업을 듣겠다”고 다짐했지만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고도 한동안 마스크를 내리지 못했다. 주변 친구들의 동향을 살피고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올리기를 반복했다. 회복이라는 것도 그렇게 주저하고 망설이며 이뤄지는 게 아닐까 싶다. 괴로운 사건이 일단락되면 다음 순서는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겠지만, 그것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고통받은 시간만큼의 긴 길이 나 있고 남은 일은 그 길을 더디게 가는 것이다. 더디게 가다 보면 비대면 취재로 굳어버린 몸도 풀리고 언젠가 일상이 돌아왔다는 희망적인 기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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