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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삼성에 가린 현대·기아차의 대물림/김병수

등록 2006-03-12 18:03

김병수 논설위원
김병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설립 첫해인 2001년에 1985억원 매출, 65억원의 당기순이익.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며 불과 4년 뒤인 2005년에는 1조5408억원 매출에 79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둔 회사가 있다. 지난해 상장했는데 시가총액이 2조여원에 이른다. 믿기 어려운 실적이다. 글로비스란 회사다. 경영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그룹 차원에서 밀어준 덕이다. 정몽구 회장 가족이 출자해 세웠고, 최대주주는 정 회장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다. 자동차 물류사업을 독점한다. 물류비도 후하게 쳐주니 땅 짚고 헤엄치기다. 중고차 경매사업도 급성장했다. 현대·기아차 대리점들이 경매에 올릴 중고차를 갖다 대느라 죽을 맛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글로비스를 통해 정의선씨는 간단히(?) 1조원 가까이로 재산을 불렸다. 배당금은 빼고 주식 쪽만 보자. 상장 전에 보유 주식 일부를 노르웨이 빌헬름센에 팔아 일차로 1억달러(1천억원 가량)를 챙겼다. 그러고도 31.9%의 지분이 있다. 시가로 6500여억원에 이른다. 한때는 1조원이 넘었다. 지금은 글로비스 납입자본금이 187억5천만원이나 설립 첫해는 25억원이었다. 정의선씨의 초기 출자금은 많아야 20억원 안짝이다. 5년 남짓 사이에 수백배로 튀긴 셈이다. 지분 28.1%를 갖고 있는 정 회장도 6천억원 정도 재산을 늘렸다. 현대·기아차에 남았을 자산 가치 일부가 정 회장 일가 주머니로 옮겨진 것이나 다름없다. 빌헬름센의 입도 벌어졌다. 1억달러 주고 산 지분의 값어치가 한해 사이에 5배인 5천억원 안팎이 됐으니 정씨 집안에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정씨 주머니 불리기에 동원된 회사는 글로비스만이 아니다. 설립 4년 만인 지난해 7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중견 건설업체 반열에 오른 엠코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003년까지는 정씨 지분이 없었다. 그런데 2004년엔 59.9%이던 글로비스 지분이 줄고 정씨 지분이 25%로 나온다. 자동차용 멀티미디어를 만드는 본텍(올해 2월 현대오토넷에 합병)도 그런 회사다. 정씨가 종잣돈으로 비상장사에 출자하면 현대·기아차가 전폭적 지원으로 주식 가치를 높여주고, 커진 자산은 다시 종잣돈으로 재투자되며 기하급수적으로 재산을 불리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정씨의 기아차 지분도 2%로 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다. 증여세나 상속세도 피해 간다. 변칙적인 재산 불려주기가 언제 끝날까. 아마 경영권 승계에 충분한 실탄이 만들어질 때일 게다.

삼성이 이재용씨를 위해 해온 경영권 승계 작업과 비교하면, 단기간에 조원대의 부자로 만들어 준 건 같다. 비상장사 동원도 같다. 다만 삼성은 전환사채 헐값 매각이란 방법을 썼고, 현대·기아차는 아예 회사를 설립해 밀어주는 방식을 택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현대·기아차의 방식이 더 노골적이다. 변칙이기는 마찬가진데 삼성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편법 증여 혐의로 사법처리 대상에도 올라 있다. 반면에 현대·기아차는 삼성에 쏠린 눈길 뒤에 숨어 있다. 일부 언론에 간헐적으로 다뤄지긴 했으나,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현대차도 묵묵부답, 화답이 없다. 지금이라도 현대·기아차에 대해 우리 사회가 깊이 살피고 해답을 찾아야 마땅하다.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순 없다. 이런 식으로 회사 이익의 사적 편취나 세금 없는 재벌 대물림이 계속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도 삼성이란 우산이 언제까지나 여론의 폭우를 피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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