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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여성·아랍인이란 편견 딛고 세계적인 건축가로 우뚝 선

등록 2023-03-30 18:20수정 2023-03-31 02:37

[나는 역사다] 자하 하디드(1950~2016)

1950년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등장하기 한참 전인 당시 이라크 사회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자하 하디드의 집안은 유복한데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도 열려 있었다.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수학을, 영국 런던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학생 때부터 재능을 뽐냈던 듯하다. “스튜디오를 장악하고 모두에게 어떻게 할지를 지시했다. (나중에야) 그가 학생이란 걸 알게 됐다.” 1970년대 초반 건축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건축가 에바 이르지치나의 회고다.

1980년 런던에 자하하디드 건축사무소를 차렸다. 1982년 홍콩 피크레저클럽 공모전에 당선됐다. 건축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지만 건축주 사정으로 건물을 올리지는 못했다.

불운이 잇따랐다. 설계하는 건물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도 정작 건축은 이뤄지지 않았다. ‘탁상 건축가’ 또는 ‘종이 건축가’라 불리기도 했다. 시련의 원인 중 하나는 그의 작품이 너무 새로웠기 때문. 곡선을 즐겨 활용하며 개성 강한 비정형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는데, 예술성 강한 그의 작품은 공간효율성은 떨어지고 건축 비용이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여성이라는 점을, 어떤 사람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어떤 사람은 내 작업이 표준을 벗어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디드의 회고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은 나아졌다. 1990년대 초 처음으로 건물을 올릴 수 있었다. 독일과 스위스 접경 비트라 가구공장에 소방서를 지어 이름을 알렸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건축가 반열에 올랐고,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44개 국가에서 30개 이상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저명한 상과 직함을 추가하며 건축계의 정상에 올라섰다.” 디자인 역사가 리비 셀러스의 말이다.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런던올림픽 수영장 등이 그의 대표 작품이다.

옛 서울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2014년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그가 설계했다. “전형적인 자하 하디드 건축물”(건축비평가 울프 마이어)이라는 평. 2016년 3월31일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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