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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핀란드 여성 총리 총선 패배가 술파티 때문이라고?

등록 2023-04-06 18:47수정 2023-04-07 02:38

2일(현지시각)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총선에서 중도우파인 페테리 오르포 대표(맨 오른쪽)가 이끄는 국민연합당이 득표율 20.8%로 선두를 차지했다. 중도좌파에 속하는 사회민주당 산나 마린 현 총리(가운데)와 극우 리카 푸라 핀란드인당 대표(맨 왼쪽). EPA 연합뉴스
2일(현지시각)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총선에서 중도우파인 페테리 오르포 대표(맨 오른쪽)가 이끄는 국민연합당이 득표율 20.8%로 선두를 차지했다. 중도좌파에 속하는 사회민주당 산나 마린 현 총리(가운데)와 극우 리카 푸라 핀란드인당 대표(맨 왼쪽). EPA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노지원 | 베를린 특파원

‘“‘광란의 술 파티’ 독배 될 줄이야”…30대 여총리 핀란드 총선서 완패’

지난 2일 핀란드 총선 결과를 전한 한 한국 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파티 논란’ 마린 총리 결국 실각’ “광란의 술 파티 탓”이란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이들 제목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산나 마린 총리가 이끌던 사회민주당이 총선에서 패한 이유는 총리의 술 파티 때문이 아니라서다. 선거 승패를 가른 핵심 쟁점은 경제였다. 사민당 정부 집권기 공공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난 게 논란이 됐다. 실제 핀란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마린 총리가 집권을 시작한 2019년 64%에서 최근 73%로 올랐다.

지난해 8월 마린 총리가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춤추는 영상이 유출된 뒤 총리의 행실을 문제 삼는 ‘엄숙주의적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지지자들은 되레 결집했다. 당시 수많은 핀란드 여성들이 자신의 춤·파티 영상을 에스엔에스(SNS) 등에 올리며 마린 총리와 연대한다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번 총선 결과가 마린 총리와 사민당의 ‘완패’라 보기도 어렵다. 사민당 득표율은 19.9%로, 국민연합당 20.8%, 핀란드인당 20.1%에 이어 3위에 그쳤지만, 지난 총선(17.7%) 때보다 득표율이 오르고 의석수도 3석 늘었다. 마린 총리는 “비록 오늘 1등은 못 했지만 정말 좋은 성과”라고 평했다. 마린 총리는 임기 4년 동안 코로나19 대유행을 신속·단호하게 관리했고,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빠르게 추진했다. 엄마와 아빠에게 동일한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등 제도 개선에도 앞장섰다.

상황이 이런데도 적지 않은 한국 언론이 선거 결과를 ‘술 파티’와 연결시켰고, 일부는 마린 총리가 여성임을 강조하는 제목을 달았다. 이 언론사가 앞으로 남성 총리 기사에 ‘남총리’라는 표현을 쓸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이렇듯 사실과 동떨어진 제목의 기사를 내는 이유는 뭘까. 지구 반대편 북유럽 국가의 정치·사회 상황에 무지했거나, 다른 언론을 따라 한 것일 수 있다. 무능하거나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의 저명 언론은 이번 핀란드 총선 결과를 ‘술 파티’나 ‘여총리’와 결부시키지 않았다. 물론 지난해 8월 파티 동영상 논란 때는 이 문제를 다뤘고, 그중 일부는 ‘왜 총선을 앞두고 자리를 잃을 수 있는 행동을 했냐’, ‘왜 친구들이 영상을 찍도록 내버려 뒀냐’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당시 마린 총리는 말했다. “저는 사람입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저에게도 기쁨과 빛, 재미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보고 싶지 않은 모든 종류의 사진과 동영상이 끼어들었지만, 이 역시 삶입니다. 저는 단 하루도 일이나 업무를 놓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적당한 음주가무가 정신건강에 긍정적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 아닌가. 마린 총리는 물러서지 않고 “그 뒤에도 춤을 췄다”(2월18일 뮌헨안보회의)고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마린 총리는 곧 총리에서 물러나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한다. 5일 그는 “인생의 새 페이지를 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더는 ‘술 파티 논란’, ‘여성’ 총리라는 수식어를 볼 일 없기를.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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