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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민족을 버린 윤석열 정부와 민족 없는 국익

등록 2023-04-16 18:37수정 2023-04-17 02:41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지난 3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한민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무력화하며 12년 만에 열린 회담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1%가 되어도 할 일은 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먼저 물컵의 반을 채우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으로 물컵이 채워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일본 정부는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에 대해 의례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 부르며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역사조차 부정해버렸다. 대신 기시다 총리는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말했다.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는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또한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역사 인식 또한 계승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를 괴롭혔던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이미 사과했고 사실은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는 너에게 사과하지 않겠다’는 궤변이었다. 정상회담은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거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가해자 앞에, 피해자가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이며 화해를 구걸하는 모욕적인 일이었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모욕감을 안긴 것이다.

한국의 보수가 건국과 산업화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심 통치이념이 일제에 ‘모욕’당한 민족의 상처를 상기시키는 민족주의였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기이했다. 이승만은 친일 세력의 절대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일본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자신의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박정희, 다카키 마사오는 “충성을 다해 일본에 보답하고, 개와 말처럼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한 만주국 장교였다. 하지만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도 민족이 당한 모욕을 끊임없이 환기하며 국민을 경제개발에 동원했다.

그랬던 보수가 마침내 민족을 버렸다. 권위주의가 1987년 민주화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었고, 더 이상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한국 보수에 남은 것은 신자유주의와 반공주의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국익이 있는 곳이다.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보수가 민족을 버렸다는 것은 국익이 더 이상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족이 사라졌을 때 보수에 국익은 투자한 만큼, 능력만큼 이윤을 배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힘 있는 자들, 가진 자를 위해 일하는 이유이다. 민족은 한국의 보수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국민 모두를 위해 헌신해야 할 마지막 남은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가 민족을 버렸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평화 대신 대결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북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같은 민족이 아닌 것이다. 북한이 힘으로 제압해야 할 적이 될 때, 교류와 협력을 통해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요구와 행동은 모두 이적행위가 된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동맹에 모든 것을 다 거는 이유이다.

그래, 어쩌면 ‘민족’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구시대 유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역사는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폭력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내내 자행된 조선인에 대한 폭력적인 민족차별과 해방 후 수십년 동안 계속된 독재는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민족을 단순히 낡은 유물과 근대에 만들어진 “상상된 공동체”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말처럼 미래를 만들어 가는 힘의 원천이 일상에서 누적되고 구성된 감정이라면, 민족(감정)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이웃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추동했던 강력한 힘이었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 갈 힘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버려야 할 민족은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폭력을 자행했던 민족이다. 민족을 버린 윤석열 정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국익이 사라져 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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