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벌레로 변한다면

등록 2023-04-23 18:22수정 2023-04-24 02:36

어느날 아침 눈을 뜨고 나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한 남성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전말을 담은 프란츠 카프카의 중편 소설 <변신> 초판 표지 삽화. 위키피디아
어느날 아침 눈을 뜨고 나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한 남성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전말을 담은 프란츠 카프카의 중편 소설 <변신> 초판 표지 삽화. 위키피디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질문이 있다. “만약 내가 바퀴벌레로 변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갑자기 부모나 친구한테 물어보니 상대방은 당황할 수밖에.

엉겁결에 “밟아 죽여야지” “변기 물에 내릴래” “살충제 뿌릴 거야”라고 답해 경악과 분노를 선물하기도 하고, “그래도 사랑할 거야” “예쁜 집에 넣어 기를게” “나도 바퀴벌레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지” 라고 하여 처음으로 가화만사성 을 경험하기도 했단다.

헛소리라고 핀잔만 줄 일이 아니다. 자못 깊은 의문을 갖게 한다. ‘바퀴벌레로 변하면 나는 나인가, 바퀴벌레인가?’ 정신과 육체가 따로따로라 생각해온 우리는, ‘껍데기는 바뀌지만 나는 그대로’ 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럴까? 바퀴벌레는 껍데기일 뿐이고 그 속엔 변함없이 ‘나’ 가 들어앉아 있는 걸까.

‘말’ 은 수시로 탈바꿈한다.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세심하게 자신을 바꾼다. 예컨대, ‘쏘다’ 를 보자. 총을 쏘기도 하지만, 전파도 쏘고, 벌이 내 팔을 쏘기도 한다. 이 셋은 같은가, 다른가? 생맥주는 톡 쏘는 맛에 마시지만, 무례한 사람에게도 한마디 톡 쏘아 주기도 한다. 이 둘은 다른가, 같은가? “내가 쏠게.” 할 때의 ‘쏘다’ 는 ‘총을 쏘다’ 와 같은 ‘쏘다’ 인가?

말의 변신은 주변에 어떤 말을 만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불변하는 본질이란 없다. 변하지 않는 게 없는데, 사람이라고 다를쏘냐? 자아의 경계를 계속 허물어 어제와 다른 나로 탈바꿈할 뿐. 그렇다면 내일 바퀴벌레로 변하는 것도 기대해봄 직한 일이다. 어둡고 습한 곳을 안식처 삼아 더듬이 휘날리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