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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창곤의 정담] 노동조합, 배제와 고립을 넘어 희망이 되려면

등록 2023-05-16 18:30수정 2023-05-17 02:36

이창곤의 정담 21 _노동조합1
이는 정책 활동이 여전히 노동운동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이를 위한 정책역량과 자원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조는 “노동시장 정책이나 사회정책의 세세한 영역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정책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박명준 선임연구위원)는 진단도 나온다. 이런 취약성은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부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란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노동절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열린 ‘노동개악 저지! 윤석열 심판! 5·1 총궐기 2023 세계노동절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노동절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열린 ‘노동개악 저지! 윤석열 심판! 5·1 총궐기 2023 세계노동절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임금 등) 고용조건의 유지 또는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임금노동자들의 항상적인 단체”(비어트리스-시드니 웹 부부, <영국노동조합운동사>(1894))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노조는 개항기 인천항 부두노동자들이 결성한 ‘두량군’(斗量軍)으로 알려져 있다. 두량군은 “일본과 조선 간에 미곡 수도(受渡) 때에 두량(미곡의 양을 정확히 계량하는 일)을 하는 특허를 받은 일종의 노동자 조합”이다. 1892년 5월13일 <조선신보>에 실린 기사의 내용인데, 부정적 논조 일색인 이 기사는 이들 부두노동자가 쟁의를 벌였다는 소식도 전했다.

노동조합이 법적 실체로 인정된 것은 한참 뒤인 1948년 헌법과 1953년 노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선노동공제회(1920) 같은 전국적인 노동조합이 조직되는 등 노동운동은 일찍이 움텄다. 미군정청 노동부에 의하면, 1946년 11월 말 기준 남한에만 1179개 노동조합이 있었고 가입 조합원 수는 20만4천명에 달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이후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 시기 탄압과 배제, 분출과 고립의 부침을 거치면서도 몸집을 키워왔다.

21세기 한국 노조는 조직률은 낮지만, 양적으로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2021년 말 기준 전체 노조원은 293만3천명(조직률 14.2%)이다. 한국노총 123만8천명, 민주노총 121만3천명, 상급단체 미가맹 노조 47만7천명이다. 2010년(조합원 수 163만3천명, 조직률 9.8%)과 비교하면 조합원 수는 78.5% 늘었고, 조직률은 4.4%포인트 올랐다.

내부 구성의 질적 변화도 있었다. 2010년에는 ‘개별 기업 노조 60%-초기업노조(산별노조) 소속 40%’였지만, 2021년에는 ‘기업 노조 40%-초기업노조 소속 60%’로 바뀌었다. 초기업노조 소속이 늘었다는 것은 한국 노조가 노동자 일반 또는 사회적 공익 실현을 위한 활동 기반이 넓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 ‘엠제트(MZ)세대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 협의회’ 출범도 주목할 흐름이다.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최근 들어 여성과 비정규직 노조 가입이 활발해졌지만,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중심이라는 특징은 그대로다. 한국 노조는 경제적 이익을 넘어 청년·여성·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주변부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여전히 취약한 구조인 셈이다. 이는 노조의 대표성 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낳거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비난 담론의 논거로 악용되기도 한다.

노동조합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어떨까?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46%에 이르렀다. 하지만 66%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기주의적 집단이지만, 그래도 필요하다”는 것이 노조에 대한 지배적 시선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는 ‘공간적으로 기업 내부에, 이념적으로는 실리에 갇힌 조직’이 되고 있다. 내부로부터 문을 걸어 잠근 폐쇄구조가 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고립과 정치적 배제는 깊어지고 있다”(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는 진단도 나온다.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노동조합은 조직화, 투쟁, 그리고 교섭의 주체로서 임금의 결정자 역할을 하지만, 정책을 다루는 주체, 정책행위자로도 존재한다.”(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책행위자로서 노조는 노조의 또 다른 얼굴이다. 현실에서 노조는 임금인상 투쟁을 넘어 노동조건 일체와 그에 연계된 정부 정책과 제도 변화에 관여한다. 노조원의 이해관계가 임금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복지, 기후환경 등 전방위적으로 연계된 데다, 이들 정책 방향과 구체적 내용이 조합원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노조는 필연적으로 행정부와 정당, 국회, 시민단체와 마찬가지로 주요 정책행위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관해선 사회는 물론 노조 자신까지도 간과하거나 소홀히 해왔다.

서구 역사에서 노조는 적극적인 정책행위자로 활동하며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이자 권력자원이 됐다. 대표적으로 스웨덴 복지의 발전은 노조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노조는 사회민주당이 집권해 복지국가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이전에 이미 산별노조 차원에서 실업기금을 자발적으로 조직해 실업보험제도를 선행했고, 1932년 사회민주당 집권 이후에는 건강보험·주택수당·아동수당 등 스웨덴 사회에 주요 복지제도가 뿌리 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한국의 ‘조직노동’도 비록 권력자원은 취약하나 노사정의 한 축이며, 각종 정부위원회 등에서 노동계 대표로 참여할 정도로 정책행위자로서 위상을 지닌다. 때로는 시민사회와 연대나 대중투쟁을 통해, 때로는 각종 정부위원회 참여나 정당과의 연계를 통해 꾸준히 활동해왔다. 노동시간 등 노사관계 제도나 노동기본권 확충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국민연금 등 복지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 활동을 벌였고 입법 성과도 적잖이 있었다. 그러나 그 위상에 걸맞은 정책적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관해선 대체로 회의적이다. 양대 노총의 최고 정책담당자인 한국노총의 정문주 사무처장과 민주노총의 이정희 정책실장도 “나름 애썼지만, 아직 약하다”고 인정한다.

이는 정책 활동이 여전히 노동운동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이를 위한 정책역량과 자원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조는 “노동시장 정책이나 사회정책의 세세한 영역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정책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박명준 선임연구위원)는 진단도 나온다. 이런 취약성은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부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란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노조는 어느 때보다 큰 시련을 맞고 있다. 노사관계의 중재자여야 할 정부가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노조 배제’를 넘어 ‘반노조’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탄압과 배제에 맞서 양대 노총 내부에서는 투쟁의 목소리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노사관계는 뒤틀려졌고, 사회적 대화는 실종됐으며, 적대적 노정관계만 차갑게 자리하고 있는 ‘동토의 시간’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이런 시련과 위기의 시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노조에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노조를 적대시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철학과 집권세력의 무능 외에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기 때문”이지만, 그 고립은 “노조에 대한 존재의 부정이 아니라 노조 활동에 낮은 동의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 따른 비판”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향후 주도권은 변화하는 쪽에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보다 노조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회연대를 재천명하고 여성리더십과 청년에게 더 많은 역할을 주고, 활동의 정당성을 외치는 ‘목소리 내기’보다 ‘보이지 않는 국민을 설득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선 내부 혁신과 더불어 정책역량 강화가 필수다. 국민을 설득하고 시민사회와 연대를 단단히 하기 위한 도구이자 핵심 콘텐츠는 ‘정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이익을 넘어 시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정책 말이다. 이런 정책행위자로서 역할에 힘쓸 때 노조는 조합원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한국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이정희 외, 한국노동연구원)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회정책 이슈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한겨레> 편집국에서 기동취재팀장과 부장, 논설위원, 부국장 등을 거쳤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영국 편>, <복지의 문법>(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공저),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등이 있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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