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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6411의 목소리] 노들장애인야학, 30년간 차별과 맞서 싸우는 학교

등록 2023-05-24 18:26수정 2023-05-24 19:09

“선생님, 점심값과 교통비를 빼면 한달 10만원도 안 돼요.” 최저임금법(7조)에는 ‘장애인은 일할 수 없는 사람이니 최저임금은 주지 않아도 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렇게 9만명 넘는 장애인들이 보호작업장에서 노동권과 인권을 부정당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임시 교실이 마련된 2020년 5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유리빌딩 주차장 천막에 수업중임을 알리는 글귀 등 학생들이 장식한 다양한 메모들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노들장애인야학의 임시 교실이 마련된 2020년 5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유리빌딩 주차장 천막에 수업중임을 알리는 글귀 등 학생들이 장식한 다양한 메모들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천성호 |  노들장애인야학 공동교장

노들장애인야학은 교사보다 학생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학교다. 실제 지하철 출근길에 야학에 먼저 와있는 학생 전화를 종종 받는다. 나는 “노들로 가고 있어요. 있다가 봐요”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야학인데 아침부터 학생들이 오는 이유는 발달장애 학생들이 시간을 보낼 곳이 없거나, 오후 야학에서 운영하는 공공일자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2001년 이동권 투쟁으로 시작된 야학에서는 중증장애인 권리 투쟁과 더불어 주간에는 탈시설 장애인을 모아 ‘자립생활교육’을 진행했다. ‘들판의 학교’, ‘거리의 학교’, ‘투쟁하는 학교’라는 정체성을 담아내야 했고, 그래서 2013년 ‘야간학교(夜學)’에서 ‘야학(野學)’으로 이름을 바꿨다. 야학에서 교사는 학생과 함께 배움과 권리를 깨치며 장애운동의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는’ 역할을 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이 문을 연 1993년 당시 초등학교 졸업 미만 장애인이 60% 정도였다. 2021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그 수치는 37.5%로 줄어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30.5%, 대학 졸업 비율 14.3%로 조사됐다.

하지만 학교에 못 간 장애 성인이 평생교육에 참여한 비율은 비장애 성인의 4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장애인이 배움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학교로 이동할 수 없고, 배울 학교도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고 배움의 속도가 다른 학생과 함께 할 교사가 필요했다. 또한, 장애 학생의 고유한 몸과 행동과 소리, 몸짓이 비정상이라는 편견과도 맞서야 했다. 사회적 차별과 맞서 싸우는 교육이 필요했다.

내가 야학교사를 자원했던 2010년이나 지금이나 교사들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다. 하루 8시간 노동이 규정돼 있지만, 저녁 야학수업이 9시에 끝나니 그때까지 지켜야 한다. 토요일 교사회의, 주말 각종 집회 참석 등으로 지치기도 하지만, 장애 학생들의 권리를 지켜낸다는 믿음으로 버틴다.

그간 중요한 변화라면, 중증장애인 학생들의 공공일자리가 만들어져 발달장애 학생들이 참여한다는 점이다. 장애 학생들은 일자리가 없어 보호작업장을 전전하며 하루 6시간 일하고도 한달 20~30만원을 받았다. “선생님, 점심값과 교통비를 빼면 한달 10만원도 안 돼요.” 최저임금법(7조)에는 ‘장애인은 일할 수 없는 사람이니 최저임금은 주지 않아도 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렇게 9만명 넘는 장애인들이 보호작업장에서 노동권과 인권을 부정당했다.

그래서 2020년부터 야학은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추진해 학생들이 ‘문화예술 활동’, ‘권리옹호 활동’, ‘장애인식 개선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다. 학생들은 “평생 일을 할지도, 월급을 받을지도 몰랐다” “일하러 간다고 남들에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말한다. 1년 계약직인 공공일자리도 야학이 3개월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하고 싸우면서 노동에서 배제된 장애인 ‘몫의 일부’를 얻어낸 결과물이다.

야학에 중중장애인이 많이 다니는 이유는, 탈시설 장애인이 많이 입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뇌병변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시작해 2010년을 넘어가면서 발달장애인 탈시설이 이뤄졌다. 발달장애는 특성상 모두가 중증장애인이다. 야학은 시설에서 10년, 20년, 30년 만에 처음 ‘사회’로 나와 배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문을 열었다. 야학의 절반 이상이 탈시설한 학생들인데, 다시 시설로 가고 싶다는 학생은 없다. “여기엔 자유가 있잖아요.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어 좋아요. 옷도 사 입을 수 있어서 좋아요. 혼자 있어서 좋아요.”

2021년 12월 아침 8시 혜화역에서 지하철 선전전을 시작해 벌써 1년6개월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야학 상근활동가와 교사 위주로 참여하다 지난해 중순부터 함께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지하철 승차장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라고 23년째 외치고 있다.

장애인들은 6411번 버스를 타지 못했다. 장애인은 투명인간, 목소리 없는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이었다. 비문명적·비장애인 중심 한국 사회에 맞서 야학은 천천히, 조금씩, 세상과 맞서 싸워나가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올해 8월이면 개교 30주년을 맞는다. 장애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온 30년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살고자’ 외친 30년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 야학은 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자유와 평등을 노래하며 투쟁해 나갈 것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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