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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G7 정상회의 성과와 한-일 관계

등록 2023-05-28 18:47수정 2023-05-29 02:35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지난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히로시마/연합뉴스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지난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히로시마/연합뉴스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관계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일정한 성과도 거두고 있다. 기시다 내각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본 여론도 지지하고 있다. 중요한 이웃 나라이면서도 지금까지 험악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여러 한계가 있지만 관계 개선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달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대한 성과를 놓고는 일본 내에서 다양한 평가가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 지도자들이 모인 탓에 ‘핵 없는 세상’이라는 말만 요란할 뿐, 구체적인 핵군축을 위한 행동계획은 없었다. 이에 대해 현지 피폭자단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 주요 7개국 정상들이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을 방문하는 등 원폭 피해의 실상을 일부라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앞으로 세계 지도자들에게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기시다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함께 참배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많은 한반도 출신자들이 왜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당했을까. 그것은 일제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희생이었다. 히로시마는 청일전쟁(1894년) 이후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할 때 전쟁의 거점이자, 군수물자의 집결지였다. 태평양전쟁(1941~1945년) 중에도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이 끌려와 군수공장에서 일했다.

일본인들은 원폭 피해자 가운데 한반도 출신이 많다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최근 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일본인들은 한-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해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으로는 한-일 사이에 미래 지향적인 우호 관계를 만들 수 없다.

기시다 총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법의 지배’와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러시아·중국에 대항하는 서방국가들의 결속을 과시했다. 당장은 러시아를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의 지배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가 러시아·중국을 비난하는 ‘정치적 도구’가 된 데는 큰 위화감이 느껴진다. 일본 내부에 법치나 자유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법을 무시한 자의적 지배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민간 방송사를 상대로 ‘공정중립’이라는 명분으로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몇달 전 국회 심의에서 밝혀졌다. 또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총격 사건과 관련해 통일교와 자민당 보수파 정치인들의 긴밀한 관계가 세상에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통일교의 범죄 행위가 방치된 데 대해 정치인들의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런 정도로 일본의 지도층 정치인들은 법치와 인간의 자유를 지키는 것에 무관심하다.

법의 지배와 자유라는 가치는 한-일 관계에도 적용돼야 한다. 세계 곳곳에선 옛 식민지에 대한 억압, 소수민족의 탄압 등 억눌린 쪽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사과·보상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일본인계 차별에 대한 사과도 그 한 예이다.

기시다 총리가 법의 지배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세계적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한국 및 한반도와 관련해 인권을 존중하고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지속해서 메시지도 내야 한다. 과거 억압에 대해 사죄하고, 차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자신의 언어로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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